“영적 전쟁과 기도”(단 10:10-14)

“인자와 같은 이”(그리스도)가 기도응답을 다니엘에게 전달하려고 오던 중,
페르시아의 악한 영들이 21일 동안 막았습니다(13-14절).
이와 같이, 기도응답이 우리 삶에 이루어지는 것을 방해하는 악한 영들이 존재합니다.
우리는 기도응답이 이루어질 때까지 인내하면서, 사탄과 악한 영들에 대항하여 적극적으로 싸워야 합니다.

■ 1. 먼저, 우리는 “사탄과 악한 영들이 왕처럼, 세상에서 권세를 잡고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함으로써,
모든 일들을 영적으로 이해하고 분별해야 합니다.
아담이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을 때,
그는 더 이상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러자 사탄은 버림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아담처럼 불순종하고 죄지은 사람들)을,
자기 자녀(자기 부하)처럼 지배할 수 있는 합법적인 권리를 갖게 되었습니다(엡2:2).

(1)그 결과, 쓰레기가 있는 곳에 쥐가 집을 짓듯이, 죄가 있는 곳에 악한 영이 집을 짓고 그 죄인을 다스릴 수 있는 권세가 생겼습니다.
신자가 육체의 본성을 따라 계속해서 죄를 지으면, 악한 영의 지배와 공격을 받습니다.
사울왕처럼 정신병에 걸릴 수도 있고, 교회와 신앙을 떠나서 오랫동안 방황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신자가 성령의 인도를 따라 말씀에 순종할수록 죄를 덜 짓게 되고, 죄를 덜 지을수록 사탄의 지배와 공격이 약해집니다.
죄 없는 곳에는 사탄이 활동할 수 있는 권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2)눈에 보이는 일들 뒤에는 보이지 않는 악한 영의 활동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십시오.
예를 들면, 사탄은 자기가 지배하고 있는 비신자들이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방해합니다.
또, 성령의 소욕보다 육체의 소욕을 선택하도록 유혹하고,
말씀과 기도와 예배를 싫어하고 인터넷과 놀이와 직장일에 집중하는 것을 더 좋아하도록 만듭니다.
또,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게 만들고, 절망하게 만들고, 사명을 포기하게 만듭니다.
또, 사탄의 세력은 교회를 분열시키려고 합니다.
성도들이 소그룹에 모이는 것을 싫어하게 만들고, 사역팀에서 협력하지 못하게 만들고,
목회자나 사역팀장 등 리더십을 공격하게 합니다. 또, 사탄은 세상에 범죄를 확장시키려고 노력합니다.
악한 문화, 악한 법, 악한 사회시스템을 만들어, 세상에 대한 지배력을 확장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악한 정치인들, 악한 예술가들, 악한 공무원들을 부추겨서, 악한 제도를 계속 만들어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세상의 악한 문화와 시스템의 배후에는 악한 영의 권세와 조종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엡6:12).

■ 2. 사탄과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다니엘은 자기 욕심을 위해서 기도한 것이 아니라, 미래에 자기 백성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깨닫기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늘에서 영적 전쟁이 일어났고, 승리하신 그리스도께서 종말에 대한 묵시를 다니엘에게 가르쳐줬습니다(11,12장).
그 결과, 미래의 성도들은 다니엘이 기록한 묵시를 읽으며 큰 위로와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다니엘처럼,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나라와 교회와 성도들의 위하여 기도함으로써, 영적 전쟁을 일으키십시오.
예수이름의 권세로, 성령의 능력으로 기도하십시오. 그래서 기도응답을 통해, 하나님나라와 교회를 확장하시기 바랍니다.

“수치가 떠나간 날”(수 5:8-9)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할례를 받았을 때,
하나님께서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애굽의 수치”는 2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 1. 이스라엘백성들이 애굽에서 노예로 살면서 겪었던 수치를 말합니다.
그들은 430년동안 애굽에 살면서, 애굽의 우상을 섬겼고, 애굽의 문화를 따라갔기 때문에 수치와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얼마나 큰 사랑과 능력을 가졌는지?” 잊어버렸기 때문에,
그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하나님이 10가지 기적을 행했던 것입니다(출10:2).
►여러분, 우리에게 왜 수치스러운 일이 생기고, 우리의 삶이 왜 노예처럼 힘들고 아픕니까?
그 이유는, 우리가 바로처럼 악인을 만났거나 운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전혀 몰랐거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떠나거나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으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열매가 없어서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렘17:13, 12:13).
또, 우리가 돈 성공 권세 등 세상의 헛된 우상들을 사랑하고 예배하면,
헛된 열매와 공허함으로 가득 차서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시97:7).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수치를 당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 소유의 땅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가나안땅을 선물로 주심으로써, 그들이 수고한 만큼 열매를 거두게 하셨습니다.
그 결과 그들의 수치와 고난은 떠나갔고,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과 자유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자기의 약함, 무능함, 열매없음을 보면서, 수치심을 느끼거나 하나님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낍니까?
그래서 마음의 평강과 안식이 없고, 삶의 활력과 기쁨이 없습니까?
그렇다면, 자기능력을 의지하는 교만과 우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고, 속히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과거의 죄를 회개하고 죄사함의 은혜를 받아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모든 수치를 떠나가게 하실 것이고, 인생의 열매와 안식과 자유와 기쁨을 은혜로 주실 것입니다.

■ 2. 애굽의 수치는 그들이 광야에서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받았던 고난을 말합니다.
그들은 열명의 정탐꾼 말을 듣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말했습니다(민14:4).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은 광야에서 고생만 하다가 죽고, 자녀들만 가나안땅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애굽사람들이 그들의 고통과 죽음을 보면서, 얼마나 기뻐하며 그들을 조롱했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그들은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언약백성으로서 말씀에 순종하기로 약속했고, 하나님은 그들을 보호하시고 축복하시기로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더 이상 수치가 없을 것임을 선언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고, 성령으로 마음의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여 말씀에 순종하면,
우리는 징계와 수치를 받지 않고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 우리의 수치는 죄 때문에 왔고, 예수님은 우리의 죄와 수치를 없애주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죄를 씻고,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 열매와 안식과 자유를 누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모든 수치를 벗으시기 바랍니다.

“사람을 달아 보시는 하나님”(단 5:24-31)

바벨론의 벨사살왕은 일천명의 귀족을 초청하여 큰 잔치를 벌였습니다.
그때 갑자기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서 벽에 글을 쓰고 사라졌습니다.
그러자 벨사살왕이 다니엘을 불렀고, 다니엘은 그 글자를 해석했습니다.

►그 글자는 아람어로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었습니다.
“메네”는 “세다, 계수하다”는 뜻인데, “하나님께서 왕의 나라의 날 수를 계수해보니,
이제 남은 날이 없다(즉, 나라가 멸망한다)”는 뜻입니다(26절).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바벨론을 멸망시키기로 결심했을까요?
그 이유가 27절에 나옵니다.
► “데겔”은 “저울로 무게를 달아보다”라는 뜻인데, 하나님께서 벨사상의 무게를 달아봤더니
기대했던 것보다 많이 부족했기 때문에 바벨론을 멸망시키기로 결정했던 것입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탈취해온 금 은 그릇에 술을 부어 마시고,
바벨론의 우상을 찬양함으로써, 하나님을 멸시하고 모독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는 할아버지 느부갓네살왕이 교만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정신병에 걸려 소처럼 풀을 먹으며 살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22절).
그런데도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치와 쾌락을 즐기면서 자기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그 결과, “우바르신”, 즉 바벨론을 두 개로 쪼개어 메대와 바사에게 넘겨주겠다고 예언하신 것입니다.
실제로, 그날 밤, 바사왕 고레스의 군대가 쳐들어와서 벨사살을 죽이고 바벨론을 멸망시켰습니다.

■ 여러분, 모든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각, 마음의 동기, 말, 행동, 인격, 죄악, 선행 등
우리를 항상 세어보시고 달아보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눅12:7, 시139:1,3).
(1) 다윗처럼, 겸손한 마음으로 우리의 삶을 지켜보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시기 바랍니다(시62:9).
그래서 벨사살처럼 죄악의 무게는 무겁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섬기는 무게는 가벼워서,
결국 “우바르신”(우리의 삶이 쪼개지고, 부서지는 징계)를 받지 않도록 영적으로 항상 깨어 있으십시오.

(2) 또, “하나님이 보실 때, 내가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내 죄가 무엇인지?
내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배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섬기면서 살고 있는지?” 깊이 생각하는 자아성찰의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래야지, 부족함 없는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다니엘은 말, 행동, 인격, 신앙, 삶이 부족함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높은 자리에 세우셔서 평생동안 하나님나라의 일군으로 사용하셨습니다.

다니엘이 부족함이 없었던 것은 그의 신앙생활에 그 비결이 있습니다.
그는 왕 이외 다른 신에게 간구하는 사람은 사자굴에 던져진다는 법을 알면서도,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단6:10).

① 그는 하루 세 번씩 기도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려울 때나 평탄할 때나, 시간이 있을 때나 바쁠 때나, 회당에서나 골방에서나 정해진 기도시간에 기도했습니다.

②그는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가 무엇인지? 내 잘못과 죄는 무엇인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나의 부족함이 무엇인지?” 등 자기의 삶을 성찰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응답과 지혜를 받았기 때문에, 기도할 때마다 감사했습니다. 

►여러분, 다니엘처럼, 날마다기도하며하나님을만나는습관을만드십시오.
그래서자신의삶을성찰하고, 주님의은혜와능력을받아자신의부족함을채우시기바랍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단 3:13-18)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은 28미터 되는 큰 금신상을 세웠습니다.
모든 백성들이 우상에게 절했지만, 다니엘의 3친구(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왕이 분노하여, “지금이라도 신상에 절하면 살려주겠다. 절하지 않으면 풀무불 속에 던지겠다”(15절)고,
그들에게 마지막 선택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사실, 그들은 현실에 타협하여 믿음을 숨기고 우상에게 절하면, 도지사라는 높은 직위도 지키고 목숨도 건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왕의 제안과 회유를 “대답할 필요가 없는 어리석은 질문”이라고 일축했습니다(16절).
►그들의 믿음은 세상의 악한 권력과 핍박에 맞서 싸우는 담대한 믿음이었고,
부와 성공이라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순결한 믿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가진 믿음의 확신과 용기는 어디서부터 나왔을까요?

■ 1. 그들은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을 정확하게 알고 믿었습니다. (17절)
①그들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실재)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격이시기 때문에, 그들을 아시고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많이 경험했습니다.
그 결과,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그들이 지금 죽을 위기에 처한 것을 지켜 보고 계시다는 것을 확실히 믿었습니다.
②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불에 던져진다해도, 하나님은 그들을 보호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믿었던 것입니다.
③그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하심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사랑하기 때문에, 위기에 처한 그들을 반드시 구원해 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이와 같이 그들은 하나님의 살아계심, 능력, 사랑,
구원하심 등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은 무엇인가?”을 정확하게 알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의 믿음은 바벨론왕의 위협과 죽음 앞에서,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강한 용기와 확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경험만큼만 하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적기 때문에 믿음이 작고, 믿음이 작기 때문에 핍박이 오면
타협하고 유혹이 오면 넘어가고 공격을 받으면 패배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많을수록 믿음이 커집니다.
믿음이 크기 때문에, 그들처럼 핍박이 와도 타협하지 않고, 유혹이 와도 넘어가지 않고,
영적인 공격을 받아도 패배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경험이 성장함으로써 큰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 2. 그들은 죽음 앞에서도 하나님의 주권과 뜻을 믿고 순종했습니다. (18절)
하나님께서 그들의 믿음과 기도에 응답하지 않아서, 그들이 풀무불에서 죽는다 할지라도, 금신상에게 절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큰 고난 앞에서도 예수님처럼(막14:36), 하박국처럼(합3:17,18),
아무 조건없이 하나님의 주권을 믿었고,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여러분, 그들처럼 순교자의 믿음(Even if의 믿음)까지 성장하시기 바랍니다.
비록 기도의 응답이 없고, 고난과 핍박이 계속되고,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고,
사업에 실패하고, 가난하고, 병들고, 믿음을 지키다가 죽는다 할지라도, 그 속에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음을 믿으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끝까지 사랑하고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라”(살후 2:1-4)

예수님은 “(종말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마24:36) 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주의 날(재림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이를 것이다”(살전5:2) 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거짓선지자들은 “주님의 날이 벌써 왔다”(2절)면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속였습니다(2절).
►그러자 바울은 종말론 교리를 가르치면서,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에 2가지 징조(배교자와 불법의 사람들)가 있을 것이니,
너희는 그들의 말에 속지 말라”고 했습니다(3-4절).
배교자는 데마처럼 하나님을 배신하여 세상을 사랑하는 성도들,
불법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이단자들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 당시 이 2가지 징조가 뚜렷하게 많지 않았기 때문에, 바울은 “예수님이 벌써 왔다”는 것은 거짓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 그 후로 2천년이 지났습니다.
초대교회에서는 배교하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사도들은 순교했고 수많은 성도들이 핍박과 고난을 달게 받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에서 배교자 데마처럼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는 성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반면, 사도들처럼, 십자가를 지고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물질과 재능과 시간과 삶전체를 하나님께 드리거나,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핍박과 고난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성도들은 너무나 적습니다.
특히, 오늘날,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이단자들의 숫자는 1세기보다 훨씬 많아졌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배교자와 이단자들(2가지 징조)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에,
예수님의 재림과 종말이 매우 가까이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이 왔음을 의식하면서, 긴장감을 갖고 재림을 준비하십시오.
“오늘 당장 예수님이 재림할 수도 있다, 오늘 하나님의 심판대에 설 수도 있다”는 종말론적인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 1. 종말론적 신앙을 가진 성도는 현세보다 내세에 더 큰 가치와 우선순위를 둡니다.
그들은 “내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평가하실 것인가?” 깊이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기의 성공과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나라와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살고,
자기를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삽니다.
►여러분, 이 땅에서의 삶(현세)는 짧고, 천국에서의 삶(내세)은 영원합니다.
안개처럼 없어질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높아지고 즐기는 것을 우선순위로 두지 마십시오(약4:14, 고전7:31).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이루어 천국에서 하나님을 기쁘게 만나는 것,
천국에서의 영원한 삶과 미래의 영광을 준비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시기 바랍니다.

■ 2. 종말론적 신앙을 가진 성도는 재림을 준비하면서 하루를 의미있게 성실하게 삽니다.
일부 데살로니가성도들은 거짓선지자들에게 속아서 “천국이 눈 앞에 있는데, 열심히 일하면 뭐하냐?”면서
일을 그만두고 게으름을 부렸습니다(3:11절).
▶여러분, 예수님이 오시는 그 순간까지, 가정과 직장과 교회에서 성실하게 일해야 하며,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십시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오는 사랑과 평화와 기쁨의 열매, 가정에서 드리는 예배의 열매,
자녀를 예수님 제자로 양육한 열매,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여 세상을 섬긴 열매,
또 교회를 섬기고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나라를 확장시킨 열매 등 아름다운 열매를 많이 만들어서,
재림하신 예수님께 드리시기 바랍니다.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살전 5:19-22)

누구든지 예수를 영접하면, 성령께서 그 마음 속에 들어가서 불처럼 활활 타오릅니다.
►그런데 그 성령의 불이 커질 수도 있고 작아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은혜의 3가지 방편(열심히 말씀 읽고, 기도하고, 예배 드리면서), 은혜를 많이 받으면, 성령충만하여 성령의 불이 커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충만하지 않고 은혜를 받지 않는다면, 우리 안에 있는 성령의 불이 점점 약해지다가,
최악의 경우 성령의 불이 꺼질 수도 있습니다.

■ 1. 우리가 성령님의 인격을 무시하면, 우리 안에 있는 성령의 불이 꺼집니다(소멸).
하나님은 인격이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각각 지(생각), 정(감정), 의지를 가진 인격체입니다.
그래서 기쁨, 슬픔, 만족감, 분노, 수치심, 근심, 탄식, 답답함, 질투 등 모든 감정을 느끼십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존중하지 않고 계속 멸시하고 무시한다면,
성령님은 슬퍼하시고 분노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님이 점점 말씀이 없어지고 활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나중엔 성령의 불이 꺼진 것(성령이 떠나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부재감).

▶여러분, 성령님의 인격을 존중하시기 바랍니다.
(1) 내 안에 성령님이 계심을 항상 의식하십시오. “내가 이런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면, 성령님이 어떻게 생각하실까?
나를 기뻐하실까, 슬퍼하실까?” 생각하십시오. 그것이 성령님의 인격을 존중하는 태도입니다.
(2) 바리새인처럼, 성령이 행하시는 일과 능력을 의심하거나
제한하는 것은 성령을 모독하는 행위로서 용서받을 수 없는 죄(마12:31)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기록된 성령의 은사와 능력이 오늘날에도 우리를 통해 나타날 수 있음을 믿고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예를 들면, 성령님은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기 위해서, 특별한 영적인 능력과 은사(성령의 9가지 은사, 고전12장)를
성도들에게 선물로 주십니다. 또, “너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행2:17)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외에, 성령께서는 우리의 이성을 초월하는 기적적인 기도의 응답과 인도하심을 보여주십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한계를 초월해서일하시는 성령의 기적적인 능력, 오묘한 지혜, 놀라운 인도하심을 믿으십시오.
성경에 나오는 성령의 여러가지 은사와 능력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래서 성령의 능력을 받아, 하나님나라를 확장하고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시기 바랍니다.

■ 2. 우리가 예언을 멸시하면, 성령의 불이 꺼집니다. (20절)
예언은 성경말씀을 의미합니다(벧후1:21).
성령님은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와 교제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말씀을 하찮게 생각하고, 읽지도 않는다면,
그것은 성령님과의 만남과 사귐을 거절함으로써 성령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성령께서 하나님의 진리와 뜻을 가르쳐 주셨음에도, 우
리가 순종하지 않고 죄를 짓는다면 그것은 성령님의 인격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의 조명하심을 받아 성경말씀을 부지런히 배우십시오.
그래서 영적인 분별력을 가짐으로써, 악을 버리고 선을 택하고, 육체의 소욕을 버리고 성령의 소욕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21,22절).
그것이 성령의 인격을 존중하고, 성령을 기쁘시게 하는 방법입니다.

“아합왕이 전쟁에서 승리한 이유”(왕상 20:13-15)

아람연합군이 북이스라엘을 공격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서, “내가 오늘 그들을 네 손에 넘기리라”고 예언하셨습니다(13절).
아합왕은 하나님이 명령하신 전쟁전략에 전적으로 순종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이스라엘군대 7,232명이 아람의 10만대군을 쳐서 크게 승리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악한 왕이요 우상숭배자인 아합이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도와주셨을까요?
하나님은 다윗, 기드온, 히스기야왕처럼, 평소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는 신앙인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전쟁에서 기적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그들과는 대조적으로, 아합왕은 바알숭배자로서 엘리야를 죽이려 했던 왕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이유를 “너는 내가 여호와인줄을 알리라”(13절)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합이 비록 악한 왕이지만, 전쟁을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케함으로써,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
하나님이 그를 버리지 않았다는 것,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깨닫길 원하셨습니다.
►그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그의 죄를 회개함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길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합은 전쟁의 승리가 하나님의 은혜이며, 하나님이 회개할 기회를 주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죄를 회개하지 않았고, 계속 우상을 숭배하며 범죄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전쟁터에서 죽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2가지 영적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 1.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좋은 일, 복된 일”은 “하나님의 도우심이요,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인정하고, 겸손한 태도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아합은 자기의 지혜와 능력으로, 자기가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에, 전쟁에서 이긴 것이라는 교만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래서 영적인 눈이 감겨서, 자기 삶 속에 함께하시고 기적적인 승리와 은혜와 능력을 나타내시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구원해주시고, 성공,물질,건강,자녀로 축복해 주신 은혜를 깨닫지 못했습니까?
또는, 그 은혜를 깨달았다 할지라도, 지금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과 교제하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헌신하지 않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아합처럼 마음이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영광을 자기의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한 후에, 지금까지 받은 은혜를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 2.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했다면, 다윗처럼 3단계로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① 인생의 모든 승리와 능력과 축복이 여러분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이요 은혜라는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시21:5).
② 여러분을 승리케 해 주신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믿고,
앞으로 두렵고 힘든 일을 만나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겠다는 믿음의 결단을 하십시오(시 21:7).
③ 이제부터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그것으로 여러분자신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 높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기로 맹세하십시오(시 21:13).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우리를 전쟁과 같은 어려움에서 건져 주시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시는 이유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시 79:9).

“길 잃은 양 떼”(렘 50:6-7)

오늘 본문에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된 2가지 이유가 나옵니다.

■ 1. 목자(왕,제사장,선지자)가 양(백성)을 잘못된 길로 인도했기 때문입니다. (6-7절앞)
남유다의 마지막 4명의 왕은 하나님보다 애굽이나 바벨론을 더 의지했고,
예레미야 같은 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았고, 부와 권력만 추구했던 악한 왕이었습니다.
또, 하나냐와 스마야 같은 거짓 선지자와 제사장들은 예레미야를 핍박했습니다.
“하나님이 곧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유대인들을 해방시킬 것이다”는 거짓말을 퍼뜨렸습니다.

►이와 같이, 목자들이 백성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했기 때문에 백성들은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결과, 길 잃은 양이 사자에게 먹히듯이, 백성들은 안식을 얻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그들을 발견한 자(바벨론)에게 먹힌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목자로 세우셨을까요? 

①교회의 지도자들(안수받은 목회자,목자목녀, 사역팀장)을 목자로 세워셨습니다.
특히 우리교회는 “너희는 왕 같은 제사장”(벧전2:9), 개혁주의 평신도신학을 따라 평신도가 이끌어가는 교회입니다.
그래서 목자목녀는 “너는 내 양을 먹이라”(요21:17)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으므로 양(목장식구들)을 예수의 사랑으로
보살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또, 사역팀장들은 팀원들을 잘 보살피면서, 사역을 잘 진행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②또, 가정은 작은 교회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부모를 목자로 세우셨습니다.
아버지는 제사장으로서 자녀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어머니는 남편의 돕는 배필로서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고 자녀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줘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교회에서 또는 가정에서 목자로서의 사명과 책임을 잘 감당하고 있습니까?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자기의 시간과 열정을 얼마나 쏟아붓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맡겨주신 양들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알고 있고, 얼마나 섬기고 있고, 얼마나 기도하고 있습니까?
►저는 목회자로서 양들(성도들)과 신앙적인 대화를 더 많이 나누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성도들의 마음과 영적 상태를 잘 알아야지, 신앙적 조언을 해 주고, 필요한 말씀을 가르치고, 기도를 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최소한 1달에 1번은 모든 성도들에게 전화심방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성도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떠한지? 자녀들의 신앙 상태는 어떠한지?
기도제목이 무엇인지?”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그 결과, 저는 목자로서 양떼를 바른 길로 인도하는 책임을 다하고,
성도들은 목회자의 인도와 기도를 받으면서 바른 길로 가는 것입니다.   

■ 2. 양들(백성들)이 목장(하나님의 처소)를 뛰쳐나와 죄를 범했기 때문입니다. (7절뒤)
백성들은 깨어있지 못했고, 하나님(목장의 울타리)을 버렸고, 우상을 의지했고, 서로 속이고 빼앗고 싸우면서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목자가 양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한 죄 때문에 양들이 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양들(백성들) 스스로 죄를 지었기 때문에 벌을 받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겔18:20)
▶그러므로 목자든 양이든 각자 자기 죄 때문에 벌을 받기 때문에, 각 사람은 자기 영혼을 자기가 지키고 자기가 책임져야 합니다.

▶여러분, 성도가 교회 공동체라는 울타리를 떠나서 혼자 있으면 사탄의 공격을 받기 쉽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의로운 처소인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모이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 것”입니다.
►그런데, 코로나사태로 인해, 지금 모든 교회, 모든 성도들이 영적으로 위험한 상태에 있습니다.
베드로는 사자에게 먹히지 않으려면 “깨어 있어서, 사자를 경계하라”(벧전5:8)고 말했습니다. 
①우리가 깨어 있기 위해서는 “신앙의 Basic”(큐티하고 기도하는 것)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래서 참된 목자이신 예수님과 교제를 나누고 예수님이라는 울타리 안에 거함으로써 평안과 안식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②또, 우리는 “성도간의 교제”를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교제를 통해서 다른 성도의 마음 속에 계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고,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기뻐하고,
함께 축복하고, 함께 기도할 때, 우리가 그리스도라는 울타리 안에 함께 거하는 형제자매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바빠도 서로 시간을 내고 지혜를 모아, 줌이든 카톡이든 어떤 방법으로든지,
교제를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코로나 위기 속에서도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말씀과 기도로 예수님과 교제하고, 성도들과 교제함으로써,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능력을 받으십시오.
그래서 그 은혜와 능력으로, 가정과 교회 안에서 각자 하나님이 주신 목자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올무를 제거하라”(삿 2:1-5)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시면서 명령하셨습니다.
“가나안 땅의 주민을 다 쫓아낼지라… 그들이 너희를 유혹하여 죄를 짓게 할까 염려가 된다…
그것이 너희를 잡는 올무가 되리라”(출 23:31-33)
또, 가나안 정복전쟁을 마친 후,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그 명령을 백성들에게 다시한번 기억시켰습니다.
“너희 중에 남아있는 가나안 민족들을 가까이 하여 서로 왕래하면…
그들이 올무가 되며, 덫이 되며, 옆구리에 채찍이 되며, 눈에 가시가 되어… 결국 이 땅에서 멸망하게 될 것이다”(수 23:12-13)

■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지파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자기 땅에 남아있는 가나안족속을 진멸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들은 결국 너희를 찌르는 가시가 되고…옭아매는 올무가 될 것이다”(삿 2:2-3)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예언대로 가나안족속이라는 올무에 걸려 큰 고통을 받았습니다.
사사시대에 이스라엘은 가나안왕 야빈에게 20년, 블레셋족속에게 약 60년동안 지배를 받았습니다.
특히 가나안족속의 악한 문화와 종교가 올무가 되어, 이스라엘을 파괴했습니다.
그들은 동네마다 산당을 만들어 가나안족속이 섬기던 바알신, 아세라신, 태양신 등 우상에게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그 땅에서 쫓겨나 멸망했습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이 다 제거하지 못한 소수의 가나안족속들이 나중에 성장하여 그들의 올무가 되어,
그들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여 멸망의 길로 인도했던 것입니다.

■ 올무(덫)은 우리가 다 제거하지 못하고,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작은 죄”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처음엔 너무 작아서 힘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작고 힘없는 올무(작은 죄)에 걸리면, 그 죄가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멀어지게 함으로써,
우리에게 큰 고통과 아픔을 줍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너무 심심해서 인터넷 게임과 도박을 시작했다가,
나중엔 게임중독자가 되어 게임을 하기 위해 집도 팔고 직장도 버렸습니다.
어떤 사람은 너무 화가 나서 실수로, 물건을 던지고 아내나 자녀를 때렸습니다.
그러다 나중엔, 화가 조금만 나도, 물건을 던지고 사람을 때리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이와 같이 죄는 작은 죄, 작은 실수에서 시작하여, 습관과 중독이 됩니다.

► “죄의 목표”는 우리 마음의 중심에 계신 하나님을 쫓아내고, 하나님의 자리에 앉는 것입니다.
블레셋이 힘을 키워 이스라엘을 60년동안 지배했듯이, 올무(작은 죄)가 성장하여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고 우리의 삶을 통째로 파괴하는 것입니다.

■ 우리가 올무(작은 죄)에 걸려서 고통 당하지 않기 위해서 3가지 지혜가 필요합니다.
(1) 먼저 우리는 선과 악(죄), 의와 불의를 분별하는 지식을 갖춰야 합니다.
성경말씀을 열심히 읽고 묵상함으로써,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 받아 영적 분별력을 키우십시오(딤후 3:16-17).
(2) 성령께서 죄를 깨닫게 하시거나 양심의 찔림을 받으면, “즉시” 회개하십시오(엡4:26).
(3) 시간을 정하여 “규칙적으로”, 조용히 자신의 마음(내면)을 성찰하고 살피십시오.

►여러분, 위 3가지 지혜를 사용하여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죄)”를 잡으십시오(아 2:15).
그래서 마음과 삶의 포도원에 꽃을 피우고 풍성한 열매를 거두시기 바랍니다.

“드림(offering)의 성경적 원리”(고후 9:6-8)

로마의 글라우디오황제때, 가뭄이 심해서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이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그 사실을 알리고, 예루살렘 성도들을 도와주기 위해서 구제헌금을 모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후, 빌립보교회에 연락하여 구제헌금 모금을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빌립보교회는 가난한 형편에서도 풍성한 연보를 모아 바울에게 보냈지만,
그보다 먼저 시작한 고린도교회는 헌금을 제대로 모으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그들이 구제헌금을 모을 수 있도록 격려하기 위해서,
헌금을 비롯하여 하나님께 무엇을 드릴 때(offering) 우리가 알아야 할 2가지 성경적 원리를 가르쳤습니다.

■ 1. 드림(offering)에 있어서, “양적인 원리”(6절)
►우리가 하나님께 많이 드리면, 하나님께서 많이 갚아 주십니다.

특히 십일조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진실한 신앙고백을 하는 행위이므로,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너희 온 백성이 나의 것(십일조)를 훔치니, 너희 모두가 저주를 받았다.
너희는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놓아, 내 집(성전)에 먹을거리가 넉넉하게 하라.
이렇게 (내게) 바치는 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가 쌓을 곳이 없도록 복을 붓지 않나 보아라”(말3:9-10)
또 예수님께서는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두라”(마6:19-20)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돈과 물질을 사용하여 이 땅에 큰 집을 지으려 하지 말고, 하나님께 드려서 하늘에 큰 집을 지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드린 십일조와 헌금을 기억하시고, 우리에게 많은 것으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
또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생명, 건강, 마음의 평안, 가정의 행복, 자녀에게 신앙을 주시고 돌보심으로 갚아주십니다.
또 우리가 천국에서 하나님을 만났을 때, 우리에게 큰 칭찬과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 2. 드림(offering)에 있어서, “질적인 원리”(7절)
우리가 아까워하거나, 벌을 받을까봐 두려워서 억지로 드리는 헌금은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충분하시고 만족하시기 때문에 전혀 부족함이 없으십니다(행17:25).
그래서 우리의 사랑이나, 도움이나, 섬김이나, 헌금이 전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십일조를 드려라, 너희 몸을 드려라, 교회를 섬겨라”고
명령하시는 이유는 우리의 사랑(마음)을 확인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리 헌금을 많이 드리고 봉사를 많이 한다 할지라도, 그 안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기뻐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 모든 offering(드림)은 아무 가치 없는 쓰레기에 불과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물질과 헌신과 봉사를 드릴 때, 인색하거나 억지로 하지 말고 오직 감사와 기쁨으로 드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질,건강,직장,재능을 은혜로 주신 것은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돕고,
하나님나라와 교회를 섬기라”는 뜻입니다(8절)

■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로 주신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고, 그것을 하나님께 올려 드리기로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감사와 기쁨으로 드릴 때 하나님께서 더 많은 것을 갚아 주실 것이며, 우리의 선한 일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아름다우신 하나님”(시 27:4)

북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알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앗수르에게 멸망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호세아가 말했듯이, 힘써 여호와를 알아야 합니다(호6:3).
■그렇다면, “Knowing God”(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에 대해서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머리로 아는 것은, “Knowing about God” 즉,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것이지, 하나님을 아는 것과는 다릅니다.
성경에서 “알다(Know)”는 히브리어로 “야다”인데, 상대방을 만나서 마음으로 느끼고
경험함으로써 알게 되는 “Personal knowledge”(인격적인 지식)을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인격적인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말씀과 기도와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삶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를 경험하는 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 그런 관점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습니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1646년) 제2장 에 나오는 하나님의 속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살아계심, 오직 한 분 이심, 무한하심, 영이심, 광대하심, 영원하심, 전능하심, 지혜, 거룩, 자유, 사랑, 은혜 긍휼, 오래 참으심,
선하심, 진실하심, 용서하심, 상 주심, 죄를 미워하심, 죄를 심판하심, 삼위일체, 자존성, 절대적 주권 등 수십 가지입니다.
각각의 하나님의 속성은 탁월하고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의 속성이 곧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이 모든 하나님의 속성은 우리가 평생동안 배우고 느끼고 경험해야 할 신앙적인 과제, 배움의 주제입니다.
►특히 수많은 하나님의 속성들이 하나님의 존재와 행위에 있어서
완벽하게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은 아름답다, 아름다우신 하나님!!”이라고 감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경험하여 “Knowing God” 하나님을 더 많이 알게 될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더 많이 느끼게 될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을 더 많이 알고 경험하고 싶었기 때문에,
평생 동안 여호와의 집에서 살면서 날마다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 소원을 가졌던 것입니다(4절).

이것이 또한 우리의 소원이 되길 바랍니다.

■ 우리는 Knowing God 즉, 하나님의 속성을 알고 경험한 인격적 지식이 더 많아질 때,
우리는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을 더 많이 느낄 수 있습니다.
  

►1. 힘써 성경말씀을 읽으십시오.  
성경은 우리를 하나님과의 관계 속으로 초청하여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게 합니다.
비신자라도 성경을 꾸준히 읽으면, 성령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마음에 비춰서
하나님의 속성을 깨닫게 하십니다(고후4:6).

►2. 힘써 성경말씀을 마음 속 깊이 “묵상”하십시오.
성령께서는 우리가 성경을 묵상할 때 “하나님의 감정”(우리를 향한 사랑 긍휼 용서, 죄에 대한 분노와 미움 등)을
느끼게 해 주심으로써, 우리의 행동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되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의지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나라와 교회를 더 섬기고, “그리스도의 신부” 로서 더 순결한 삶을 사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을 온세상에 전파하시기 바랍니다(벧전2:9).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요 3:22-30)

세례요한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제자들에게 자주 가르치고 증언했습니다(26절).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1:29),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오는 것을) 내가 보았고,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다”(요1:34).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의 제자들은 스승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추종자의 숫자가 줄어드니까 걱정 되고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분노의 화살을 예수님께 돌려, “저 사람 때문에, 우리가 망했다”라고 예수님을 미워했던 것입니다(26절).
“예수님이 망하더라도, 나만 흥하면 된다. 나만 성공하고 높아지면 된다”는 이기적인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죄로 인해 타락한 인간이 만들어낸 “세속적인 가치관”입니다.
세속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기 때문에,
바벨탑을 쌓는 것처럼 돈 물질 지식 권력 명예 사람 등 무엇이든지 많이 가지고 높이 쌓고 싶어합니다.
남의 사업은 실패해도 되지만 내 사업은 성공해야 하고, 남은 낮아져도 되지만 나는 높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에서 사역할 때도, 경쟁심, 욕심, 비교하는 마음, 질투하는 마음이 작동합니다.
그래서, 남의 사역은 힘들어도 되지만 내 사역은 성공해야 하고,
남의 교회는 쇠하여도 되지만 내 교회는 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특히, “세속적 가치관”을 쫓아가는 사람은 과정보다 결과로 모든 것을 평가합니다.
부모는 “자녀가 몇 점을 받고 몇 등을 했느냐?”로 자녀를 평가합니다.
“돈을 얼마나 많이 벌었느냐?”로 사업가를 평가하고, ”실적을 얼마나 많이 올렸느냐?”로 직장인을 평가하고,
“교인들의 숫자가 얼마나 많으냐?”로 목회자와 교회를 평가합니다.

■ 1. 하나님의 평가기준(성경적인 가치관)은 세속적인 가치관과 크게 다릅니다.
►하나님은 결과보다 과정을 더 중요하게 보십니다.

그래서 학생이 부정행위를 해서 높은 점수를 받거나, 사업가가 불법적인 방법으로 돈을 벌거나,
교회 사역팀원들이 싸우고 미워하면서 사역을 진행했다면 사역 결과가 아무리 좋아도 하나님은 그 모든 행위를 악하게 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일과 사역을 진행할 때, 하나님 말씀의 원리(성경적 가치관)을 따를 때, 기뻐하십니다.
남의 자녀도 사랑하고, 남의 사업체도 존중하고, 남의 교회와 사역도 사랑하면서 협력할 때,
그 결과와 무관하게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이것이 성경적인 가치관을 따라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 2. 우리는 어떤 일과 사역을 할 때, “남의 사역을 존중하는 마음”을 갖고,
각자 “자기 사역의 범위”를 잘 지키는 가운데,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요한은 “모든 사역은 하나님이 주신 귀한 사역”이라고 생각했습니다(27절).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높이는 상황에서도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고, 그분보다 앞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며,
신랑(메시야)의 친구일 뿐이다”(요1:23,3:28), 자기 사역의 한계를 명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30절)고 말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세례요한처럼,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사역의 범위와 권한”을 잘 지키면서, 주님만 높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가정 일터 교회에서, 우리가 쇠함으로써 주님은 흥해야 하며, 우리가 약해짐으로써 주님의 강함이 나타나야 하며,
우리가 낮아짐으로써 주님이 높아질 때,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이것이 복인가, 화인가?”(마 7:17-20)

예수님은 본문에서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구별하는 방법”에 대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즉 어떤 사람의 예언이 이루어져 좋은 열매를 맺으면 그는 참 선지자이지만,
예언이 성취되지 않거나 나쁜 열매를 맺으면 그는 거짓 선지자입니다.
그래서 “너희는 그 열매를 보고, 그 사람을 알아야 한다(판단해야 한다)”(20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좋은 열매, 나쁜 열매”라는 판단 기준을 “내가 어떤 친구를 사귈 것인가? 어떤 일을 할 것인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것이 복인가 화인가?” 판단할 때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 1. 우리에게 영적으로 “좋은 열매”를 맺게 해 주는 사람과 만나는 것이 “복”입니다.
예레미야와 바룩처럼, 다윗과 요나단처럼, 우리가 어떤 친구의 영향을 받아서, 죄를 멀리 하게 되고,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마음의 위로와 격려를 받으면서 영적으로 좋은 열매를 맺고 있다면, 그 친구와의 만남은 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이 악한 자와 교제하는 것을 싫어하십니다(대하 20:37).
그래서 여호사밧왕이 북이스라엘의 악한 왕 아하시야왕과 해상무역을 하기로 의기투합하여 배를 만들었지만,
하나님께서 그 배를 산산조각 내셨습니다. 그와 같이 어떤 친구의 영향을 받아서, 우리가 자꾸 죄를 짓게 되고,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고,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는 등, 영적으로 “나쁜 열매”를 맺고 있다면, 그 만남은 복이 아니라 화입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과 교제를 시작하기 전에, 또는 교제 중에 멈춰 서서,
“내가 저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좋은 열매를 맺고 있는지, 나쁜 열매를 맺고 있는지” 신중하게 판단하십시오.
그래서 좋은 열매를 맺는 “복된 만남”을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2. 두번째로, 우리는 무슨 일을 할 때, “이 일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 어떤 열매를 맺게 하는가?”를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73:28)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좋은 열매”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더 가까워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좋은 열매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더 알고 싶은 갈망을 주고, 하나님께 더 예배하고 더 기도하고 싶은 열정을 주고,
그리스도를 더 따르고 싶은 열심을 줍니다. 또, 이 세상의 악한 문화와 부도덕한 쾌락을 싫어하게 만들어서,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더 열심히 섬기게 하고, 성령의 능력을 더 의지하도록 만듭니다.
►그러나, “나쁜 열매”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더 멀어지게 만듭니다.
우리가 말씀에 불순종하게 만들고, 예배하고 기도하고 싶은 마음을 식어지게 만듭니다.
세상의 악한 문화와 이기적인 가치관을 사랑하게 만들어서, 하나님나라와 교회를 덜 섬기게 만들고,
그리스도와 성령을 덜 따르게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또는 어떤 일이 진행 중일 때) “내가 이 일을 통해서, 영적으로 좋은 열매(복)를 맺을까?
나쁜 열매(화)를 맺을까? 이 일이 나를 하나님께로 이끌고 있는지, 세상으로 이끌고 있는지”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 일이 나를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여 나쁜 열매를 맺고 있다면, 그 일을 중단하는 것이 좋습니다.
만일 중단할 수 없다면, 그 일을 하면서도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모세처럼 살기”(신 34:10-12)

오늘본문은 모세가 죽은 후 후손들이 추가로 기록한 부분입니다.
그래서 마치 모세의 비문처럼, 후손들이 “모세가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일을 했는지?”를 평가한 내용입니다.

■ 1. 모세는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하며 친밀한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10절)
모세가 성막에 들어가면,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구름기둥이 내려와,
사람이 자기 친구에게 말하듯이 주님께서는 모세와 얼굴을 마주하고 말씀하셨습니다(출33:11).
모세는 시내산에서 40일 금식하면서, 하나님 말씀을 들었고 하나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산에서 내려왔을 때, 백성들은 그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결과, 후손들은 “모세야말로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보고 만났던 사람,
세상에서 하나님과 가장 친밀한 교제를 나누었던 사람”으로 기억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모세처럼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사람의 특징은 육체의 게으름과 안일함을
버리고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코로나사태가 시작된 이후로, 큐티와 골방기도, 주일예배, 기도회, 목장모임, 사역팀 활동 등 우리의
신앙생활이 급격히 침체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코로나가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 기다릴 수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 없이 열심히 일하고, 기도의 골방에서 하나님과 교제하지 않고 바쁘게 일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 없이, 혼자서 일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열심히 일해서 어떤 열매를 거둔다 할지라도,
그 열매는 하나님의 영광과 상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바벨탑처럼 무너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첫번째 과제는 교회에서 모임을 갖는 것이 쉽지 않은 코로나시대의 현실을 인정하고
우선 각자의 “개인 경건생활(큐티, 골방기도)”부터 회복하는 것입니다.

모세처럼,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가짐으로써,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과 기쁨과 자유과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2. 모세는 사명감이 있었기 때문에, 어려운 환경에서도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11-12절)
하나님께서 “애굽으로 가라”고 명령했을 때, 모세는 불순종했습니다(출3:11, 4:10).
그러나, 모세는 결국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는 것을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사명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말씀에 순종했더니, 자신을 통해 수많은 하나님의 기적과 능력이 나타났습니다(출14:16, 17:6).

►여러분, 모세처럼 사명감을 클 수록 순종하는 능력이 크고, 순종하는 능력이 클 수록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이 더 크게 나타납니다.
이 세상은 애굽처럼 우상이 가득한 땅,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타락한 땅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너는 애굽으로 가서, 내 백성을 구원하라”는 사명을 주셨듯이,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서, 그들을 구원하고 제자를 만들어라. 사탄의 나라를,
하나님의 나라로 변화시켜라”는 사명을 우리와 우리 교회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두번째 과제는, 교회의 정상적인 모습을 회복함으로써, 교회의 사명을 이루는 것입니다.
국가의 방역지침을 지키고 마스크를 쓴 현실 속에서도, “우리가 어떻게 하면 성령충만한 주일예배를 드릴 것인지,
어떤 방법으로 목장모임과 사역팀을 다시 시작할 것인지” 다함께 기도합시다.
그래서 코로나시대에 적응하는 새로운 교회생활(뉴 노멀)을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십니다”(스 6:6-10)

BC538년, 페르시아왕 고레스는 바벨론을 멸망시킨 후,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무너진 성전을 건축하라”(스1:3)는 칙령을 내렸습니다.
2년 후, 스룹바벨이 유대인 5만명을 인솔하여 예루살렘에 귀환했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의 방해가 극심하여, 16년동안 성전 공사가 중단되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를 보내셔서, 성전재건의 사명을 잊어버렸던 그들의 마음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그 결과,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의 지도 하에, 무너진 성전을 다시 건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유브라데스강 서쪽을 다스리는 총독 닷드내와 부하 스달보스내가 찾아와서,
“너희가 누구의 허락을 받고, 이 성전을 건축하고 있느냐?”(스5:3)”라고 물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이 그들에게 뇌물을 주면서, 공사를 중단시켜 달라고 로비를 한 것 같습니다.
스룹바벨은 고레스칙령에 근거하여 성전건축을 하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스5:13-16).
그러나 관리들은 그 말을 믿지 못하여, 다리오왕에게 편지를 보내 확인을 요청했습니다.
다리오왕이 왕궁 문서실에서 두루마리를 발견했는데, 거기에 “고레스왕이 유대인들에게 성전건축을 허락했다”(스6:3-5)”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오늘본문은 다리오왕이 사실 확인 후, 총독 닷드내와 관리들에게 보낸 조서인데,
우리는 다음 두 가지 영적인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 1. 하나님의 일과 사역은 하나님이 진행하시기 때문에, 누구도 방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성전재건 사역이 시작되기 약 900년 전에 모세를 통해서(신30:3-5), 약 200 전에 이사야를 통해서(사65:8-9),
유대인 포로들의 귀환을 예언하셨습니다. 또 18년 전에 고레스왕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포로귀환을 명하는 칙령을 내리게 했습니다.
또, 귀환자들이 성전건축을 16년간 중단하니까,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를 보내셔서 다시 사역을 진행시키셨습니다.
►이와 같이, 성전재건사역은 약 천년 전부터 하나님께서 뜻을 세우시고,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진행해 오신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그러므로, 사마리아인들도 막을 수 없고, 총독과 관리들도 막을 수 없습니다(6-7절).
►여러분,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직접 진행하십니다.
그러므로 자기 능력을 신뢰하지 말고, 바울처럼 기도로 성령충만하여, 하나님 능력을 의지하십시오(행13:11).
그러면, 하나님께서 지혜와 능력을 주셔서,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사람들과 사탄의 세력을 물리치게 하실 것이며,
모든 일과 사역 가운데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해 주실 것입니다.

■ 2. 하나님의 일과 사역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공급하심이 있습니다.
다리오왕은 총독과 관리들에게 성전건축을 방해하지 말라는 명령에 덧붙여서,
건축에 필요한 경비와 제사 제물까지 공급해 주라고 명령했습니다(8-9절).
여러분, 하나님의 일과 사역은 우리에게 돈이 있고 돕는 자가 있기 때문에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이 없어도 있는 것처럼 믿는 믿음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맨 바닥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성전건축을 시작하니까,
하나님께서 모든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셨지 않습니까?
우리도 “이 일은 하나님이 주신 일이요, 사명이다”라는 믿음으로 그 일을 시작하면,
하나님께서 필요한 물질과 사람을 보내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일과 사역을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십시오.

“어찌하여 표적을 구하느냐?”(막 8:11-13)

“표적”(sign)이란 메시야를 증명하는 기적적인 사건을 말합니다.
바래새인들이 예수님에게 표적을 보여달라(11절)고 요구하자,
예수님은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이 세대에 표적을 주지 아니하리라”(12절)고 거절하셨습니다.

■ 그 이유는, 바리새인들이 표적을 보여달라고 한 목적은 “예수님을 믿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백성들이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사실을 믿게 되면,
종교지도자로서 가진 권세와 부와 명예를 예수님에게 빼앗길까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늘과 땅이 갈라지는 기적을 보여준다 해도,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고,
“그것은 바알세불 (사탄)의 도움을 받은 것이니, 또 다른 표적을 보여달라”고 요구할 것입니다(눅11:15).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본문 앞에 보면, 수많은 백성들이 예수께서 물고기 2마리, 떡 7개로 4천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또한 예수께서 문둥병자를 고치고, 죽은 야이로의 딸을 살리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들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하는 확실한 표적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더 많은 기적을 일으켜 우리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더 많은 떡을 주어 우리 배를 채워주십시오”라는 이기적인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떡을 먹고 배가 불렀기 때문이다”(요6:2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바리새인과 백성들이 “표적을 보여달라”면서 주님을 시험했듯이,
우리도 주님의 능력을 보여달라고 하나님을 시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학생은 공부를 하지 않다가, “시험에 합격시켜 주시면, 하나님을 믿겠습니다”라고 기도합니다.
어떤 성도는 열심히 일하지 않고, “로또가 되게 해 주시면, 하나님을 잘 믿겠습니다”라고 기도합니다.
어떤 부모는 평소에 기도하지 않다가, “자녀가 좋은 직장에 들어가게 해 주시면(또는, 자녀의 병을 고쳐주시면),
제 삶을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라고 기도합니다.
►이러한 기도와 바램은 바리새인처럼 “하나님을 시험하는 기도이며, 요행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가끔 그런 기도에 응답하실 때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런 기도에 응답하지 않습니다.
“조건 있는 기도”를 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응답을 해 주셔도, 백성들처럼 자기 이익을 위해 “또다른 조건을 걸고,
또다른 기적을 요구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 우리의 기도는 조건을 걸고 뭔가를 요구하는 “어린아이 수준”을 넘어서,
주님과의 관계를 추구하는 “성숙한 수준”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평소에 맡은 일을 열심히 하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인생에, 수많은 기적과 능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요나의 표적(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표적)을 믿고 구원받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마16:4).

임마누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일상적인 삶속에,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항상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마28:20, 히13:5).
그러므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예수님의 구원하심을 의심하지 말고,
기도의 응답이 없어도 절망하지 마십시오. 항상 주님과 깊은 교제를 나눔으로써,
고난 중에도 감사하며 환난 중에도 기뻐하는 것이 “참된 믿음” 입니다.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라”(롬 12:3)

생각은 우리의 행동과 인격과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본문에서 “올바른 생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권면했습니다.

► 생각에는 두 부분이 있습니다. 
즉 우리가 마땅히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고, 그 이상으로 생각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 1.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과 하나님께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잘 구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마땅히 생각해야 할 부분”만 생각하면서,
하나님께서 은사로 주신 능력과 믿음의 분량대로 “마땅히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기 분수에 맞는 생각과 행동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땅히 생각해야 할 “그 이상의 생각”은 우리의 능력과 믿음을 넘어서 하나님께 속한 부분입니다.
그 생각은 우리의 능력으로는 이룰 수 없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취될 수 있기 때문에,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만일 “그 이상의 생각, 그 이상의 일”에 대해서 우리가 계속 생각하고 집착하면, 우리의 걱정과 두려움과 스트레스만 커질 뿐입니다.
예를 들면, 부모가 아침에 자녀를 깨워서 학교에 보내는 일, 자녀가 공부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
자녀의 재능 계발을 위해서 음악, 운동, 취미를 시켜보는 일, 큐티를 잘하는지 체크하고 가정예배를 드리고
신앙교육을 시키는 일은, “부모가 마땅히 해야 할 생각이요,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부모의 사명을 잘 감당하라고, 우리에게 지혜와 믿음과 물질 등을 은사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모가 열심히 노력하는데도 불구하고, 자녀의 믿음이 성장하느냐 못하느냐, 공부를 잘 하느냐 못하느냐,
어떤 대학교에 들어가느냐, 어떤 직업을 가지느냐, 어떤 배우자와 결혼을 하느냐 등은 부모의 능력을 넘어서서
하나님께 속한 부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자녀를 인도해 주시고 자녀에게 능력을 주셔야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럼에도, 부모가 그런 일에 대해서 “내 책임이다, 내가 잘못해서 자녀가 어려움을 당한다”고 생각하여
걱정과 두려움 속에 살고 있다면, 그것은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일들이 “하나님의 능력에 속한 것임을 인정하고, 매일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그래서 자녀를 하나님께 맡김으로써, 걱정과 두려움을 버리고 주 안에서 평강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 2.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일과 남에게 맡겨주신 일을 잘 구분하십시오.
“그 이상으로 생각하다”라는 말을 헬라어로 보면, “자신의 능력을 과대 평가하다, 분수에 넘치는 생각을 하다”라는 뜻입니다.
그 당시 성도들 중에는 디오드레베(요삼 1:9)처럼, 자기의 은사, 지식, 능력을 과대평가하여,
교만한 마음으로 다른 성도들의 사역에 간섭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존 칼빈은 롬12:3절을 “자신이 받은 직분과 은사와 일 그 이상의 것을 탐내고, 남의 직분과 일에 간섭함으로써
교회를 분열시키는 교만한 자들에 대해서 바울이 경고하는 말씀”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교회는 다양한 은사를 가진 지체들이 모인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우리는 남의 은사와 사역과 직분에 간섭하는 교만한 태도를 버려야 합니다.
자기 직분과 은사와 믿음의 분량을 지켜서,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겸손한 태도로 서로 협력함으로써 교회를 튼튼하게 세우십시오.

“곤고한 자의 유일한 소망”(롬 7:22-8:2)

바울의 속사람은 예수를 믿고 거듭났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했습니다(22절).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싶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싶고,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고, 거룩한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 속에는 육체의 정욕을 자극하여 죄를 짓게 만드는 “한 다른 법(죄의 법)”이 있었습니다(23절).
그 결과, 하나님의 법을 따라가려는 마음의 법과 육체의 정욕을 따라가려는 죄의 법이 전쟁을 했는데, 죄의 법이 이겼습니다.
►그래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24절).
그는 하나님의 법(말씀)에 불순종하여 죄를 지었기 때문에, 마음이 고통스럽고 죽을 것 같이 괴로와서 심히 탄식하며 절망했습니다.

■ 우리 마음속에 바울처럼 치열한 영적인 갈등과 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성숙한 신자로 성장할 수 있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을 포함하여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악한 문화를 즐기고, 도덕적으로 타락하여 죄를 짓지만,
마음에 죄책감이나 부끄러움이나 고통을 못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죄악의 어둠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고, 사탄의 나라는 더 확장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라오디게아 성도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부자라서, 부요하고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하지만,
네 자신이 비참하고 불쌍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사실을 모르고 있다”(계3:17)
그들은 자기 의와 교만이 가득 차서 스스로 옳고 정의롭고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영적으로 부족함이 없기 때문에 말씀도 필요 없고 성숙한 성도들의 권면도 필요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 죄를 지어도 근심하거나, 죄책감때문에 고통받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그들의 성숙하지 못한 영적 상태를 지적하시면서,
“실상, 너희는 지옥에 빠진 비참한 사람들이요, 영적으로 눈 멀고, 벌거벗은,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 1. 여러분, 성숙한 신자가 되십시오.
바울처럼, 죄 때문에 근심하고 슬퍼하면서, 마음 속에 하나님의 법(말씀)과 육신의 법(죄의 법)간의 전쟁을 일으키십시오.
죄를 짓도록 유혹하는 육체의 정욕 (옛사람의 본성)을 미워하십시오.
죄와 싸워서 패배하는 자기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고 절망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죄를 미워하고, 육체와 싸우고, 육체를 부인함으로써, 옛사람”을 죽이고 예수닮은 새사람으로 성장하시기 바랍니다.
자기의 죄와 죄성을 처절하게 인식하고, 자기를 미워하고, 자기에게 절망하는 사람이 “성숙한 신자”입니다.

■ 2. 그러나 우리가 연약하여 자주 죄를 짓고 도덕적으로 실패한다 할지라도, 죄와 사탄이 주는 정죄감을 갖지 마십시오(1절).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칭의,하나님의 자녀됨을 믿고, 의심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이 주신 의의 옷은 벗겨지지 않으며, 우리는 예수님이라는 강하고 안전한 울타리안에서
항상 보호받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 3. 성령이 주시는 은혜와 능력으로 자기 죄와 연약함을 이겨내십시오(2절)
먼저, 바울처럼 “내 힘으로는 나의 죄와 연약함을 이길 수 없음”(24절)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자기 죄와 연약함을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기도하십시오.
그래서 성령의 은혜와 능력을 받아서, 죄와 연약함을 이기고 거룩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사랑의 확실한 증거”(롬 5:5-8)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 속에 폭포수처럼 부어질 때,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말씀에 순종하고 헌신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5절).

■ 1. 하나님의 사랑은 그리스도를 통해, “기약대로”(미리 예정하신 때에) 나타났습니다.
 6절의 “기약대로”(at the right time)는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미리 계획했던 하나님의 시간표에 맞춰서 예수님을 보내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때가 차매(when the time had fully come),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갈4:4)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므로, “기약대로”라는 말 속에는 “무한한 시간(countless time)”이 들어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의 구약성경의 시간과 신구약 중간기 400년을 합친 시간입니다.
즉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는 죄를 짓는 순간부터, 하나님은 “아담의 후손들을 죄에서 구원하겠다”(창3:15)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BC2,100년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셨고, BC1446년 시내산에서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부르셔서 언약을 맺고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가나안땅을 빼앗겼습니다.
그후, 바벨론과 로마 등 강대국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순종하는데 실패한 이스라엘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으시고, 마침내 하나님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하나님 말씀에 계속해서 불순종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이스라엘백성들을,
하나님은 왜 완전히 멸망시키지 않았느냐? 하나님은 왜 이 세상 죄인들을 죽이지 않고, 오래참고 인내하시느냐?”는 질문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이 불같이 일어났기 때문에 죄인들이 불쌍해서 버릴 수도 없고 죽일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호11:8-9).
►하나님의 사랑은 오래 참고 기다리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이 계속해서 죄를 짓고,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을 다 보면서도,
그들이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수 천년 동안 오래 참고 기다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도 비신자들이 속히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기다십니다.
그리고 신자들은 오래참음으로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날마다 기억하고 감사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며 말씀에 순종하며 살기를 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 2.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확실하게 증명되었습니다.
9절, “확증하다”(demonstrate)라는 말은, “숨기지 않고, 다 보여준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수 천년 동안 오래참고 기다렸던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 죄인들이 다 볼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표현하셨습니다.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아들이 고통속에 줄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또, 아들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기꺼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때 아버지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지만, 오직 우리 죄인들을 위해서 참으셨습니다.
▶여러분, 그 하나님의 사랑이 지금도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계속해서 부어지고 있습니다.
말씀읽고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봉사하는 신앙생활이 율법처럼 무거운 짐이 되어 기쁨이 없습니까?
그렇다면,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오래참고 기다려주신 하나님의 사랑,
십자가 죽음에 나타난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랑을 다시한번 묵상하십시오.
그러면 모든 부담감과 의무감이 사라지고, 하나님과 기쁘게 교제하게 될 것입니다.

“양심과 복음” (롬 2:14-16)

이방인들(비신자들)은 십계명과 율법처럼 명문화된 “선악의 판단기준”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의 본성 안에 양심을 넣어두셨습니다(14절)

■ 1. 양심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에 새긴 율법”입니다. (15절)
하나님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선이고, 남의 것을 훔치는 것은 죄악”이라는 지식을 사람의 양심에 기록했습니다.
①양심은 “선과 악, 의와 불의를 판단하는 재판장”입니다.
양심은 인간의 타락한 마음 속에 아직도 파괴되지 않고 남아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며, 도덕적인 성향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든 비신자든, 모든 사람은 양심의 소리를 하나님의 말씀처럼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양심이 “악한 일을 하지 말라, 선한 일을 하라”고 할 때, 잘 듣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는 양심이 주는 선한 생각을 거절하고, 육체가 주는 악한 생각을 따라 죄를 지을 때가 있습니다.
②그러면, 양심이 증인이 되어 우리의 죄를 고발함으로써, 우리에게 죄책감을 주고 마음을 찌릅니다.
그때 우리는 즉시 죄를 회개하고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만일, 신자든 비신자든, 모든 사람이 양심에서 나오는 선한 생각에 순종한다면, 온 세상이 하나님의 선한 형상을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한 양심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를 든든히 세우시기 바랍니다.

■ 2. 양심의 역할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16절)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유대인들은 율법대로 행했는지를 기준으로, 이방인들은 양심대로 행했는지를 기준으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들의 은밀한 죄까지 다 드러내시고 엄격하게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예수님께서 그 사람이 율법과 양심에 100% 순종했는지를 보신다면 어떻게 될까요?
바리새인처럼, 그 사람이 율법은 많이 알지만, 마음은 부패하여 위선적인 행동을 했는지를 보신다면 어떻게 될까요? 
생각으로 지은 죄, 마음으로 지은 죄, 부지불식중에 지은 죄를 전부 다 보신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러면, 누가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갈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으며…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한 사람도 없도다”(롬 3:9-12). 율법을 받은 유대인이든, 양심을 가진 헬라인(비신자)이든,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심판대에서 정죄를 받고 지옥불에 떨어져 영원한 형벌을 받을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과 양심의 한계입니다. 율법과 양심은 우리에게 죄를 깨닫게 해 주고 죄책감을 느끼게 해 주는 등
선한 역할을 하지만, 우리의 죄를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은 없기 때문입니다.
①그러므로 양심은 복음을 필요로 합니다. 복음이 없는 양심은 생명이 없는 양심, 지옥으로 인도하는 양심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양심만 믿고 “착하게 살면, 천국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양심의 한계, 착한 행동의 한계”를 깨닫고,
속히 예수의 복음을 듣고 구원받을 수 있도록 교회로 인도하시기 바랍니다. 
②신자는 하나님께 가까이 갈수록, 양심이 더 깨끗해집니다.
양심이 더 깨끗할 수록, “죽은 행실(죄악된 행동)”을 버리고 더 거룩한 삶을 살 수 있고,
하나님을 더 열심히 섬길 수 있습니다(히9:14).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서,
“더 날카롭고, 더 깨끗하고, 더 선한 양심”을 가지십시오.

그래서 더 거룩한 삶을 살고,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더 열정적으로 섬기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