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그릇 되기” (삼하 9:1-8)

바다처럼 마음이 넓고 생각이 깊은 사람, 산처럼 인격이 높고 훌륭한 사람을 “큰 그릇(큰 사람)”이라고 합니다.
큰 그릇은 더러운 그릇, 상처받은 그릇 등 작은 그릇들을 많이 품을 수 있습니다.
“다윗은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다, 그가 내 뜻을 다 행할 것이다”(행13:22) 라고  
하나님께서 칭찬하실 정도로 다윗은 큰 그릇이었습니다.

■ 1. 다윗은 “죽은 자와의 약속”도 잘 지켰습니다. (1절, 7절)
사울왕이 처음으로 다윗을 죽이려고 했을 때, 다윗과 요나단은 언약을 맺었습니다.
요나단은 “네가 아버지 사울왕에게 죽지 않고 도망치도록 도와주겠다”고,
다윗은 “나중에 내가 왕이 되면 네 가족을 죽이지 않고 지켜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삼상20:13-15).
실제로, 요나단은 그 약속을 잘 지켜서 다윗이 도망가는 것을 도와주었을 뿐만 아니라,
다윗이 광야에 숨어 있을 때 그를 찾아가서 위로하고 격려했습니다(삼상20:42).
그래서 다윗은 왕이 된 후에도 요나단과의 약속을 기억하며, “요나단은 죽었지만, 그의 자녀를 지켜줘야 한다.
내가 요나단에게 받은 은혜를 그의 자녀에게 갚아야 한다”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불러서 2가지 약속을 했습니다(7절).

첫번째는, “사울왕이 고향인 기브온에 소유하고 있던 모든 땅을 네게 주겠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너는 왕궁에 들어와서, 내 식탁에서 나와 함께 식사를 하라”는 것입니다.
므비보셋은 다윗이 자기를 죽일 것이라 예상했는데, 반대로 이렇게 큰 은혜를 받았으니, 그가 얼마나 다윗에게 감사했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십니다.
“나는 내 언약을 깨뜨리지 않으며, 내 입으로 말한 것은 결코 번복하지 않는다”(시89:3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약속과 사람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다윗처럼, 상대방이 죽었다할지라도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큰 그릇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말을 다 듣고 계시고, 우리가 한 약속의 증인이시기 때문입니다.

■ 2. 다윗은 원수도 용서하고 품고 사랑했습니다. (7절)
“한 상에서 같이 밥을 먹는다”는 뜻은 그 사람과 친밀한 교제를 나눈다는 뜻입니다.
또 “한 상에 둘러서 먹고 마셔, 우리 집 즐거운 동산이라”는 찬송가 가사처럼,
그 사람을 “사랑하는 내 자녀, 내 가족”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원수의 손자, 므비보셋에게 “내 식탁에서 밥을 먹으라”고 말한 것은
그가 사울왕을 완전히 용서해서 마음이 평안하다는 증거입니다. 또, 그를 자기 아들처럼 사랑하며 품었다는 뜻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작은 실수를 한 사람도 용서하지 않고,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미워하여 원수로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했던 원수까지 용서하고 품을 수 있을 만큼 큰 그릇(큰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은 인격으로 증명되어야 합니다.
믿음이 아무리 좋아도, 인격이 부족하면 바리새인처럼 위선자나 율법주의자가 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이 성장할수록 예수님의 성품을 더욱 닮아가시기 바랍니다.
다윗처럼, 하나님과의 약속과 사람과의 약속을 잘 지키고,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원수까지도) 용서하고 품고 사랑하십시오.
그래서 큰 그릇(큰 사람)이 되어, 하나님 나라를 위해 크게 쓰임받으시기 바랍니다.

“승리의 주님을 예배하라” (시 144:1-4)

우리는 다윗이 전쟁의 위기 가운데서 만났던 살아계신 하나님,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에 대해서 배우고자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정과 일터와 교회에서,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역사를 경험함으로써,
주님의 영광을 세상에 비추는 ‘세상의 빛’이 되시기 바랍니다.

■ 1. 하나님은 다윗에게 구체적인 전쟁의 전략과 지혜를 가르쳐 주셨습니다(1절).
블레셋이 르바임을 공격했을 때, 다윗은 전쟁의 전략을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싸우라”고 세밀한 전략과 지혜를 주셨습니다(삼하 5:23,24).
그래서 다윗의 군대가 말씀에 순종해서 싸웠더니,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전쟁의 주관자요, 뛰어난 전략과 탁월한 지혜를 가진 사령관입니다.
►여러분, 전쟁처럼 두려운 일을 만났을 때, 전쟁처럼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할 때, 사탄과 영적 전쟁을 시작할 때,
다윗처럼 제일 먼저 하나님께 나아가 지혜를 구하십시오(약1:5).
“하나님, 제가 언제 어떻게 행동 해야지, 이 전쟁 같은 어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까?
세밀한 전략과 지혜를 가르쳐 주소서”라고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뛰어난 전략과 탁월한 지혜를 주셔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 2. 다윗은 하나님께 피했고, 하나님은 그의 산성과 요새가 되셨습니다(2절).
다윗도 보통사람들처럼 전쟁에 나갈 때마다 굉장히 두렵고 무서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때마다 “내가 하나님에게 피했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철저히 믿고 의지하는 자를 보호해 주시고 승리케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다윗은 자기가 전쟁터에서 경험했던 하나님을 “6가지 방법(나의 사랑, 산성, 요새, 구원자, 방패, 반석)”으로 표현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은 전쟁이요, 이세상은 전쟁터와 같습니다.
우리는 환난때문에 고통을 받고, 질병때문에 아파하고, 치열한 경쟁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다윗처럼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피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무서운 전쟁 중에, 우리의 반석, 산성, 방패,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의 기적적인 능력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 3. 다윗은 승리한 후에, 하나님의 과분한 은혜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3,4절)
“하나님은 영원히 살아계시지만, 나는 한 번의 숨결처럼 짧게 살다가, 그림자처럼 사라지는 유한한 인생이다.
그런데, 내가 무엇이길래, 하나님이 나를 생각해 주시는가?
내가 무엇이길래, 하나님이 나를 전쟁에서 보호해 주시고, 지혜를 주시고, 승리케 하시는가?
왕의 권세까지 주셔서(2절) 백성들이 내게 복종하게 하시는가?
그렇구나,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과분한 사랑과 넘치는 은혜를 받았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과 예배를 올려드렸습니다(1.9절).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한 번의 숨결”같이 허무한 존재이고, “사라지는 그림자”같이 가치없는 존재일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생각하셨고/사랑하셨고/예수님의 피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②또, 과거에 우리가 전쟁 같은 위기를 만났을 때, 또 최근에 코로나사태 중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와 지혜와 능력을 주셔서, 그 어려움을 이기고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과분한 은혜를 받은 우리가 해야 할 사명은 다윗처럼 “감사의 챤양과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되돌아오는 길” (요 16:29-33)

제자들은 3년동안 예수님과 교제하면서,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과 의심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고별설교를 들으면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 라는 사실을 확실히 믿게 되었습니다(30절).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에게 대답하셨습니다. “이제야 너희가 믿느냐? 보아라, 너희가 나를 혼자 버려두고,
제각기 자기 집으로 흩어질 때가 올 것이다. 그때가 벌써 왔다”(31-32).
지금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고백하면서 예수님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 장담하지만,
“잠시 후 내가 붙잡히면, 너희는 믿음을 버리고 나도 버리고 흩어질 것이다”라고 예언하신 것입니다.

►실제로, 그 날 밤에, 그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각자 살길을 찾아 흩어졌습니다.
심지어 베드로는 예수를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그와 같이, 제자들의 믿음은 너무나 작고 연약한 믿음이었습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들의 약한 믿음을 책망하거나, 그들의 배신에 대해서 분노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나는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말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안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요16:33a)
즉 “너희는 나를 버리고 도망가겠지만,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실 것이다. 그래서 나는 외롭지 않고 아프지 않고 평안하다.
나는 너희의 믿음이 얼마나 약하고 변덕스러운지 이미 알기 때문에, 너희를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게 너무 미안하게 생각하지 말라. ‘과거에 내가 왜 그런 죄를 지었고,
왜 실수했고, 왜 예수님을 멀리 떠났을까?’ 자기자신을 너무 비난하지 말라.
오직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는 길이 항상 열려있다’는 것만 기억하라.
그래서 내 밖에서 살면서 방황하지 말고, 내 안으로 들어와서 평안을 누려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큰 죄를 짓고 큰 실수를 해도, 예수님은 “너는 나를 배신한 나쁜 놈이다,
너같이 악한 죄인은 내게로 돌아올 수 없다”는 식으로 우리를 책망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우리가 주님께 돌아가는 길을 항상 열어두십니다. 언제든지 내게로 돌아오라고 두 팔을 벌려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이것이, 예수의 복음이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특히, 죄를 회개하는 것이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입니다.
우리는 습관적인 죄를 지을 수도 있고, 믿음을 유지하는 일에 실패할 수도 있고, 사역하고 공부하는 도중에 실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나는 이기적이고 능력도 없는 죄인이야.
그래서 나는 부끄러워서 주님께 돌아갈 수 없고, 주님도 나를 받아주시지 않을꺼야”라며 극심한 자기혐오, 자기비난에 빠지지 마십시오.
그렇게 힘들 때일수록, 예수님을 더 생각하고, 십자가를 더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 실수, 실패, 무능력, 절망, 고통, 죽음을 대신하여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자기 몸을 찢어서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스스로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the only way)”(요14:6)가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폭풍이 몰아치는 어려운 현실, 안개가 가득한 절망속에서도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이 열려있음을 기억하십시오.
그래서 주님 안으로 들어가서 평강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참 평안은 어디서 오는가?” (요 14:27)

비유하자면, 몸은 내 존재입니다. 옷은 입는 옷 뿐만 아니라,
돈의 옷, 권력의 옷, 직업의 옷, 능력의 옷, 학벌의 옷, 외모의 옷, 사회적 지위의 옷, 가문의 옷 등을 말합니다.
►그런데 세상사람들은 내가 입고 있는 옷(가진 것)을 보고, 내 존재 가치를 평가합니다.
내가 부자라서 돈의 옷을 입으면, 사람들은 나를 높게 평가하고 친구가 되려고 몰려듭니다.
그러나 내가 가난하면, 사람들은 나를 낮게 평가하여 무시합니다.
►이것이, 세상사람들이 남을 평가하는 기준으로서, 소위 “세속적인 가치관(세속주의)” 입니다.

■ 우리가 예수믿기 전에는 세속적 가치관을 추구했기 때문에 “세상사람들에 의해서 내 가치가 판단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좋은 옷을 입고 더 많은 것을 가짐으로써, 자기 가치와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적 계층 피라미드의 윗쪽으로 올라가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참 평안을 누릴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남들과 치열한 경쟁을 하면서, 심한 스트레스, 질투심, 비교의식, 열등감,
불안, 슬픔, 우울감, 낙심, 괴로움, 죄책감 등 부정적인 감정을 많이 느꼈기 때문입니다.
물론, 소수의 사람들은 인생의 목표를 이루어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올라가서, 성취의 기쁨과 마음의 평강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주는 평안은 일시적이기 때문에, 곧 허탈감을 느끼면서 새로운 걱정과 불안과 두려움이 파도처럼 몰려옵니다.
►이와 같이, 세상나라에 살면서 세속적 가치관을 추구하는 사람은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괴롭게 사는 것입니다.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 다릅니다. (27절)
우리는 예수믿고 구원받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세상나라가 아니라, 하나님나라에 속한 새로운 피조물입니다(고후5:17).
►옛날에 입었던 돈의 옷, 능력의 옷, 직업의 옷 등을 벗고, “그리스도”라는 새로운 옷을 입었습니다(갈3:26-27).
세상이 주는 옷은 잠깐 입었다가 벗겨지는 안개와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은 취소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입은 그리스도의 옷은 영원히 벗겨지지 않는 옷입니다.
특히 하나님은 예수님의 생명 값을 치르고 우리를 자녀로 사셨기 때문에, 우리의 가치(몸값)는 다이아몬드보다 더 귀합니다.
거지가 된 탕자는 자기 가치를 종이라 평가했지만, 아버지는 변함없이 소중한 아들로 평가하여 좋은 옷을 입혔습니다.
그와 같이 탕자처럼, 우리가 실패해도, 공부를 못해도, 돈이 없어도, 외모가 못생겨도, 세상에서 입은 옷을 다 잃어버려도,
우리의 가치는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하시고 존귀하게 평가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의 정체성이요, 자존감이요, 존재의 가치입니다.
우리가 이 진리를 믿을 때, 예수님 안에 있는 참된 평안이 우리에게 들어옵니다.
부모,자녀,친구,세상사람들에게 자기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서 더 이상 노력하거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세상사람들이 나를 평가하는 말을 듣고, 감정이 업앤다운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가치를 평가하시는 분은 세상사람도 아니요 우리자신도 아니요 오직 우리의 주인되신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복음 안에서 쉼을 얻고 (마11:28), 예수님 안에 살면서,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항상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기뻐하는 자다”(마3:17).

“세족(발씻음)의 감격” (요 13:4-11)

예수께서 잡히시기 전날 밤, 유월절 식사를 하는 동안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세족식).
베드로는 “주님, 절대로 제 발을 씻기지 못하십니다”(8a)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아무 상관이 없느니라”(8b)  

► 발을 씻기는 세족식은 십자가의 피로 우리의 더러운 죄”를 씻겨주신 예수님의 구원하심을 상징합니다.
“상관”은 헬라어로 “다른 사람의 것을 내 것으로 취하는 것 (share,나눔)”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내가 네 발을 씻기지 않으면, 너는 내가 소유한 것을 share할 수 없다”로 해석합니다.
설명하자면, 과거에는 우리가 죄인이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도 없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도 없고, 하나님의 소유를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께서 십자가의 피로 우리의 죄를 씻어주셔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따라, 그의 피로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습니다”(엡1:7).
그 결과, 우리는 더 이상 죄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너는 죄없는 의인이다”라고 의롭다
칭함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칭의).

■ 1.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이 소유하신 모든 기업을 share(나누어 가질 수 있는 특권)을 가졌습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피로 죄사함 받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당당하게 하나님의 보좌로 나아가십시오.
“나는 하나님의 상속자다, 하나님의 것이 모두 내 것이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모든 필요한 것들(은사,지혜,능력,물질,사랑,평안,기쁨,위로,치유 등)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그것을 우리에게 공짜로, 은혜로 주실 것입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마 7:7)

►특히, 그리스도인이 걱정을 많이 하는 것은, “하나님아버지의 살아계심과 돌보심을 믿지 못한다”는 불신앙입니다.
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는 교만의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아버지께 기도하면서 걱정을 맡기고 마음에 평강을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자녀가 모든 일에 아버지를 의지하고 아버지께 믿고 맡길 때, 그 아버지가 영광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니 걱정할 시간이 있으면 그 시간에 기도하십시오.

■ 2. 우리는 “발을 씻듯이” 더러운 죄를 회개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10절)
우리는 구원받은 후에도 죄를 짓습니다. 우리에게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추구하는 죄성이 아직도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날마다 더러운 발(죄)를 예수의 피로 씻어서 깨끗한 삶을 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네 오른 손이 너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거든 찍어서 내버려라”(마5:30)라 하실 정도로, 죄를 싫어하고 미워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예수의 피로 씻음 받은 것에 감사하고 구원하신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예수님처럼 죄를 싫어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날마다 말씀을 읽으며 죄를 깨닫고, 성령의 능력으로 죄를 죽임으로 거룩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태양을 멈추는 위대한 기도” (수 10:12-14)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등 5개도시 가나안 연합군과 전쟁을 하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벧호론 근처에서, 이스라엘이 한참 연합군과 전쟁을 하던 중 저녁이 되어 태양이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너무 깜깜해져서 연합군을 죽일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태양이 있으면 연합군을 다 죽일 수 있는데, 이 좋은 기회를 놓치면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늘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물러라! 달아, 너는 아얄론 골짜기에 머물러라!" (수 10:12)
여호수아가 명령하는 기도를 했을 때, 태양과 달이 “거의 하루종일”(13절) 멈추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연합군을 막게다까지 추격하며 그들을 다 죽였습니다.
►이와 같이 여호수아의 기도는 매우 짧았지만 태양을 멈추는 능력을 가진 기도였습니다.
그의 기도는 왜 보통사람들보다 “더 능력이 있고, 더 위대한 응답을 받았을까요?

■ 여호수아는 “오랫동안 기도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는 모세보다 더 오랫동안 회막에 남아서 기도했고 하나님과 교제를 나눴습니다.
그래서 그는 모세의 부관으로 일하는 40년동안, 오랫동안 기도하는 습관을 만들었습니다.
그러자 모세가 죽은 후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모세의 후계자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홍해가 갈라지는 등 많은 기적을 행하셨듯이,
이제 여호수아의 기도를 들으시고 태양과 달을 멈추는 등 많은 기적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의 기도에 응답하심으로써 원수를 죽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면서(13절),
그를 하나님의 귀한 일꾼으로 사용했습니다.

■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여호수아처럼 하나님의 능력있는 일꾼으로 쓰임받고 싶다면, “오랫동안 기도하는 습관”을 만드십시오.
만일 2시간을 기도했지만, 나와 내 가족을 위해서 기도하고
이웃이나 교회를 위해서 중보기도하지 않고 끝냈다면, 내 기도시간은 너무 짧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듣고, 자동적으로 응답하시는 “vending machine”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고,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가진 인격이십니다.
그래서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과 만나서, 그분의 생각과 감정과 뜻을 알아가는 교제의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이 밤새도록 천사와 씨름했듯이, 오랫동안 하나님과 씨름하십시오.
하루에 적어도 30분 큐티하고, 30분 기도하기를 권면합니다.
그래서, 기도시간에 긴급한 기도제목을 말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질문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하나님께서 어떤 말씀과 느낌을 주셔서, 우리의 마음을 채울 수 있도록 하나님께 충분한 시간을 드리십시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잘 아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 오랫동안 기도하여 하늘에 기도를 많이 쌓아두십시오.
지금 당장 기도의 응답을 못 받는다면, 가까운 미래에 또는 우리 자녀들이 응답을 받을 것입니다.
성도의 기도는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향기가 되어 하늘에 있는 금향로에 담겨서 그리스도께 드려지기 때문입니다(계5장).
►우리의 기도는 그리스도의 마음에 새겨지기 때문에, 주님께서 보실 때 가장 좋은 때가 되면 반드시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늘에 쌓아둔 기도는 우리를 배신하지 않습니다.

“고통 받는 자들에게 예비된 하나님의 은혜” (요 9:1-7)

사람이 고난을 당하는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자기 죄 때문에 받는 고난, 두번째는 남의 죄 때문에 억울하게 받는 고난이 있습니다.
세번째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십자가의 고난”이 있습니다.  
네번째는 내가 왜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본문에 나오는 태어날 때부터 소경이 된 자입니다.
►이와 같이, 고난의 이유에는 4가지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고통 당하는 사람을 보면서 “네 죄 때문이다”(2절) 판단하거나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내가 왜 이런 고통과 아픔을 당하게 되었는가?”
이유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고통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행하실 것인가?
내 아픔을 통해서 내게 어떤 은혜를 주실 것인가? 나를 위해 예비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가 무엇인가?”를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소경을 정죄할 때,
예수님은 그를 불쌍히 여기시고 하나님의 일(즉, 소경에게 은혜와 자비를 베푸시는 일)을 행하셨습니다.

■ 주님은 고통받는 자를 불쌍히 여기셔서, 치유와 회복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7절)
소경이 눈을 뜨게 해 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예수님이 먼저 그를 찾아가셨습니다.
또, 예수님이 병든 자를 고친다면, 바리새인들이 안식일 율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비난하고 공격할
것임을 예수님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 소경을 고쳐 주셨고, 소경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그를 너무나 불쌍히 여기셨고 너무나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소경이 앞을 못보고 구걸하는 모습을 보면서,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그를 조롱하고 멸시했을까?
소경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이 고통을 겪고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까?”를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 느끼며 공감하셨습니다.
그 결과, “그의 병을 치료해 줌으로써, 건강을 회복시켜주고 인생의 가장 큰 문제를 해결해 주자”고 결심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와 같이, 주님은 고통받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들의 고통을 해결해 주기를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본심(마음)” 입니다.
심지어 우리가 우리 죄때문에 고통을 받는 경우에도, 주님은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마음이 상하고, 고통받고, 아파하고, 좌절하고, 낙심하고, 슬퍼하는 자가 속히 하나님께 가까이 오기를 원하십니다(시34:18).
그들을 위해 예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베풀어 주기를 원하십니다.
그들의 상처를 위로하고, 병든 몸을 치료해 주고, 삶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죄를 용서하는 것을 너무나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고통받고 상처받고 힘들 때, 주님께서 우리를 간절히 기다리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이때가 주님을 간절히 찾고 주님께 돌아가야 할 때(사55:6)라는 믿는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또,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음을 명심하십시오 (히11:6).
때때로 하나님의 선한 계획은 고통과 아픔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됩니다.
그러므로 고통 당할 때 낙심하지 말고, 주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치유와 회복의 은혜를 예비하셨음을
믿는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가 예비하신 그 은혜를 받으십시오

“내게로 와서, 마셔라” (요 7:37-39)

수가성의 여인 좋은 남편을 찾고 싶은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6명의 남편을 만났지만, 그들은 여인의 욕심과 갈망을 만족시켜 주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계속 솟아올라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샘물이 될 것이다” (요4:14)

■ 그런데, 이 말씀은 오늘본문과 똑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요 7:37-38)

►“목마름”이란 인간의 이기적인 욕심과 죄악된 갈망을 말합니다(요일2:16).
①육체의 욕망(더 많이 먹고, 놀고, 자고, 성적인 즐거움을 채우고 싶은 욕망)을 말합니다.
②안목의 정욕(남들의 눈에 똑똑하게 보이고 싶어서 지식을 배우고, 아름답게 보이고 싶어서 외모를 꾸미는 것 등)을 말합니다.
③이생의 자랑(돈과 성공과 권력을 가져서 자랑하고 싶은 욕망)을 말합니다.
►모든 사람은 “돈,성공,명예,지식,섹스,쾌락” 등 무언가를 소유하고 싶어하는 “목마름(욕망)”이 있습니다.
우리의 “간절한 목마름(욕망)”은 무엇입니까? 열심히 일해서 무엇을 가지고 싶고, 무엇을 이루고 싶습니까?

■ 오늘본문에서, “배에서 흘러나오는 생수의 강, 내가 주는 물,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샘물”은 성령을 의미합니다.
누구든지 예수께서 자기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음을 믿으면, 그의 마음 속에 성령께서 들어가십니다.
그러면 생수의 강이신 성령께서 그의 목마름(영의 목마름, 육체의 목마름)을 채워주시고 만족시켜 주십니다.

1. 성령님은 “영혼의 목마름”(영적인 갈망)을 해결해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진리에 대하여 영적인 질문을 하면 성령님께서 대답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큐티를 하면서 성령님께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이 말씀을 내 삶에 어떻게 적용해야 합니까?”
등 영적인 질문을 많이 하십시오. 또 기도를 하면서 “어떻게 해야지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갈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이 무엇입니까?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등 신앙적인 질문을 해서 성령의 응답을 받으십시오.
그래서 영적인 목마름을 해결함으로써, 영적성장을 이루십시오.

2. 성령님은 “육체의 목마름”(욕망, 욕심)을 해결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돈,명예,지식,쾌락 등을 다 가진다 해도, 우리의 욕심이 만족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른 방법으로 “육체의 목마름”을 해결해 주십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8:32)

►여러분, 우리에게 진리의 말씀을 가르쳐주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그래서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과 예수님을 더 사랑하도록 우리를 거룩하게 변화시켜 주십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육체의 욕심과 목마름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일 수 있는 능력까지 주십니다.
성령은 우리가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지고 교회와 하나님나라를 섬기는 것을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여러분, 우리 마음 속에 계신 성령님을 만나서 친밀한 교제를 나누십시오.
그래서 마음 속에 생수의 강물이 넘쳐나고 은혜의 강물이 흘러넘쳐서, 영적인 목마름을 채우고,
육신의 욕망으로부터 자유하는 기쁨을 맛보십시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비결” (엡 4:11-12)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시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엡1:22-23).
그리고 주님께서는 “세상속으로 들어가, 제자를 만들어라”(마28:19-20)는 명령을 주셨습니다.
세상으로 흩어져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주고,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말씀을 가르쳐서,
그들이 말씀을 잘 지키고 순종할 수 있는 제자로 만들어라는 뜻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것이 이 땅의 모든 교회와 성도들에게 주신 대사명입니다.

■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지 이 사명을 이룰 수 있을까요?
훈련소에서 훈련을 잘 받은 군인은 전쟁에 나가서 승리합니다.
그러나 훈련 받지 못한 군인은 패배하여 죽습니다.
►교회는 영적인 훈련소이며, 성도는 하나님나라의 군사입니다.
성도는 교회라는 훈련소안에서 성경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나는 누구인가?”를 배움으로 하나님자녀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창을 휘두르는 방법, 기도의 총을 쏘는 방법, 사랑하며 섬기는 방법을 배우고 연습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도들을 훈련”시켜, 세상으로 보냄으로써/ “하나님나라를 확장하는 전초기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훈련소에는 군인과 조교(코치)가 있듯이, 교회에는 훈련하는 성도들과 그들을 가르치는 목회자가 있습니다.

■ 오늘 말씀은 “목회자와 성도가 각각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사역분담의 원칙를 가르쳐줍니다. (12절)

(1)목회자의 사명은 “성도를 온전케(equip, prepare)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봉사의 일을 할 수 있도록, 목사는 말씀을 가르침으로 각 성도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친밀해지고
온전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고 훈련시켜주는 코치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를 인도하고 설교 말씀으로 가르칩니다.
또 새가족반, 일대일제자양육, 성경통독, 큐티강좌 등을 통해 말씀을 가르칩니다.
또 금요기도회와 새벽기도회에서 말씀을 가르치고, 성도들과 함께 기도합니다.
►여러분, 이 모든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성령충만하여 내면세계를 온전케 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대해서 더 많이 배우고, 공동체로 모여 기도하는 훈련을 열심히 해서,
하나님나라의 군사로써 준비되고 부족한 부분을 성장시키시기 바랍니다.

(2)성도의 사명은, 목회자의 가르침을 받아서, “봉사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킹제임스성경에서는 봉사를 “ministry”(사역,목회)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역자라 하면 목사나 전도사를 생각하지만, 성경적으로 보면 모든 성도가 봉사를 하는 minister(사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교회의 사역팀과 목장에 적극 참여하여, 주님께서 주신 은사를 활용하여 “봉사의 일”을 하십시오.
그 과정에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십자가를 지는 훈련,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인내하고 연합하는 훈련,
중보기도로 싸우는 훈련을 잘 받으십시오. 그래서 세상속으로 들어가서 영적전쟁에서 승리하여 하나님나라를 일으키시기 바랍니다.   

■ 교회는 예수께서 십자가의 고난과 뜨거운 피로 세우신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목회자는 말씀과 기도를 통해 성도를 온전케 하기 위해 더 헌신하고,
성도들은 교회의 주체로서 봉사의 일을 더 열심히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건강하게 세웁시다.

“예수님은 어떤 신자를 신뢰하시는가?” (요 2:23-25)

유월절에 모인 유대인들은 표적을 보고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믿음의 고백을 했습니다(23절).
►오늘날에도 기적을 경험한 후에,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비신자는 암에 걸려서 사망선고를 받은 후 울면서 기도했더니, 기적적으로 낫는 경험을 했습니다.
또 어떤 성도는 사업에 실패해서 절망했습니다. 그런데 천사같이 착한 사람이 찾아와서 자기에게 직장을 주고 돈을 주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기적적인 도우심에 감동하여, 열심히 교회를 섬기고 헌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신뢰하지 않았고, 그들에게 하나님나라의 일을 맡기지 않았습니다(24절).

■ 1. 예수님은 사람의 증언(말, 신앙고백)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24절 앞)
그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을 하든 안 하든, 예수를 믿든 안 믿든,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고, 메시야”라는 진리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이 흥분해서 “당신을 메시야로 믿습니다.
당신의 제자가 되어 내 인생을 다 드리겠습니다” 선포한다 할지라도, 예수님은 그들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어린 아이가 흥분하면 책임지지 못할 말을 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그들이 예수를 지식으로만 이해하고 말만하고 실천하지 않는 어린아이같은 믿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 “어린아이 같은 사람은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내 몸을 맡길 수도 없고 하나님나라의 일도 맡길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 2.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이 나중에 타락하고 변할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24절 뒤)
사람의 본성은 타락하여, 항상 자기중심적입니다(렘17:9).
그래서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이 지금은 “주님을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하고, 헌신하겠습니다”라는 마음을 먹었다 할지라도,
인간의 연약함과 의지의 한계 때문에 점점 그런 마음이 약해질 것입니다.
►그 결과, 기적의 은혜를 받기 전의 옛사람으로 돌아가서, 예수님보다 자기를 더 사랑할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죄를 지을 것입니다.
또, 예수님이 죄에서 구원해 주시고 함께 해 주시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자기 욕심을 채워주시기를 기대할 것입니다.
또, 하나님나라를 위해 희생하지 않고, 놀라운 기적과 도움을 계속 달라고 기도할 것입니다.
그러다가, 만일,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고 신앙생활 해도, 기적적인 응답도 없고 도우심을 못 받고,
신앙 때문에 핍박과 고난을 받게 되면, 그들은 믿음도 버리고 예수도 버릴 것입니다.
►실제로, 그들은 나중에 예수님이 고난을 받고 십자가를 지실 때 모두 예수를 버렸고, 오히려 예수님에게 돌을 던졌습니다.

▶여러분, “참된 믿음”이란 예수님에 대한 지식과 신앙고백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적 뿐만 아니라 일상적으로 받는 은혜(건강,재능,물질,말씀의 깨달음,기도의 응답,공급하심,보호하심)를
깨닫게 하심으로써, 우리를 아들의 복음으로 인도하시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나 같은 죄인을 버리지 않고 구원하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내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 채우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십자가의 예수를 만나서 회심하십시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변함없는 믿음과 사랑으로 말씀에 순종할 수 있고, 예수를 닮아가는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바로 그런 신자를 신뢰하심으로, 하나님나라의 일(사명)을 맡기십니다.

“성령 안에서 꿈꾸는 그리스도인” (빌 2:13)

오늘 본문은 우리 마음 속에서 일하시는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소원과 꿈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비신자는 마음 속에 성령님이 없기 때문에 자기 생각으로 자기의 꿈을 결정합니다.
사실, 크리스챤도 그렇게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그러나 엄격하게 말해서, 야망과 꿈은 다른 것입니다.
야망은 인간의 이기적인 욕심과 생각으로 세운 목표를 말합니다.
그래서 야망이 이루어지면 사람은 기뻐하지만 하나님은 그것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꿈은 우리안에 계신 성령께서 가르쳐주신 하나님의 뜻, 하나님이 주신 목표(사명)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 꿈이 이루어지면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 1. 성령충만하여, 성령께서 주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 인생의 꿈과 사명을 받으십시오.
아직도 하나님이 주시는 꿈, 소원, 사명을 받지 못했다면, 일단 하나님이 주신 재능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내가 잘 하는 것, 하고 싶은 것,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 같은 일을 꿈으로 정하시기 바랍니다.
설령, 그것이 내 생각에서 나온 야망이라 해도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신자든 비신자든, 꿈이 있는 사람이 꿈이 없는 사람보다 훨씬 더 부지런하고 집중력 있고 의미있게 살기 때문입니다.
사실 어린아이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은 말씀을 읽고 기도를 해도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알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무슨 꿈이든지 정한 후에, 그 꿈을 가지고 하나님을 계속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성경말씀을 큐티하면서, “내 꿈을 이루어 주십시오, 도와주십시오”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내 꿈이 하나님 주신 진짜 꿈이라면, 하나님께서 “그것이 내가 기뻐하는 뜻이고, 내 소원이다”라는 말씀을
주시고 확신을 주실 것입니다. 반대로, 내 꿈이 내 야망과 욕심이라면, 하나님께서 “그것은 너의 욕심이니 버려라,
나의 기뻐하는 뜻은 이것이니 이것을 이루어라”는 말씀과 확신을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너희에게 소원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계속 만나서 성령충만함으로, 하나님 주시는 꿈과 소원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내 영(성령)으로 모든 사람에게 부어주리라…너희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행2:17)

■ 2.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시고 꿈과 사명을 이루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손을 내 밀었을 때, 하나님은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은 혼자 일하시지 않고, 반드시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그러나, 두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내 안에서 착한 일(꿈과 소원)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그것을 이루실 것이다”(빌1:6)라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두번째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부지런히 일하고 푯대(목표)를 향헤 열심히 달려가십시오.
힘들고 어렵더라도, 중간에 포기하지 마십시오. 연약한 무릎을 굳게 세우고 믿음으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은혜와 능력을 물 붓듯이 부어 주셔서, 하나님 주신 그 꿈과 사명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3) 험한 길은 평탄하게 하라” (사 40:3-5)

본문의 “광야에서 외치는 자”는 특별히 세례요한을 말합니다.
요한은 요단강가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마3:2,8)라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어떤 사람들은 회개하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요한은 “옷을 두 벌 가진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누어 주고, 먹을 것이 있는 자는 없는 자에게 나누어 주라”(눅3:11)고 말했습니다.
진심으로 죄를 회개했다면, 가난한 이웃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나눠 줌으로써, 이웃사랑을 실천하라는 뜻입니다.
또, 군인들을 향해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협박하거나, 거짓 고소를 하거나, 속여서 빼앗지 말고, 봉급으로 만족하라”(눅3:14)
그리고 요한은 죄를 회개하고 변화된 삶을 살기로 결심한 사람들에게 물세례를 주었습니다.

■ 요한은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회개의 세례를 선포함으로써, 이사야의 예언을 성취했습니다. (눅3:3-6, 사40:3-5)
“굽은 길”은 마음의 길이 굽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불순종함으로써 죄를 짓습니다.
또 “험한 길”은 마음이 길가처럼 딱딱하거나, 가시덤불이나 돌이 많아서 울퉁불퉁한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제대로 만날 수 없고,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죄를 짓습니다.
또 마음이 “골짜기처럼” 깨지고 상처를 받아서, 마음의 상처와 쓴뿌리를 가지고, 남을 미워하는 죄를 짓습니다.
또 마음에 교만의 산이 높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자기생각대로 살고,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기의 영광을 추구하고 있다면, 그것도 죄입니다.
그래서, 본문에 나오는 “골짜기, 산, 굽은 길, 험한 길”, 이 4가지 표현은, 죄의 대표적인 4가지 측면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 그러므로 예수님을 만날 마음의 준비를 하는 대강절에,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자기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강절을 “작은 사순절, 겨울의 사순절”이라고 부릅니다.
6세기 동로마교회에서는 대강절에 결혼을 금지했고 금식을 선포했습니다.
또, 바티칸 성당에서는 지금도 특별참회일이 있어서 3일간 죄를 회개하는 시간을 갖고 경건하게 보냅니다.
그와 같이 대강절에 우리 죄를 씻어주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면서,
자기 죄를 회개한 사람들이 성탄절의 기쁨을 온전히 누릴 수 있습니다.
비신자가 복음을 듣고 자기 죄를 회개할 때, 예수님을 영접하여 구원받는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4:17)라고 외쳤습니다.

►여러분, ①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서(고전2:4),
비신자들이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은혜를 주시도록 끊임없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를 믿고, 죄사함의 은혜와 천국의 기쁨이 넘쳐남으로써,
교회공동체에 속하도록 하나님을 예배하는 날이 속히 오길 소원합니다.
②또, 신자가 자기 죄를 깨닫고 회개하면, 하나님과 더 깊이 만남으로써, 큰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에게 죄용서의 은혜, 영혼이 깨끗해지는 기쁨,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는 기쁨을 선물로 주십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인생의 승리와 열매, 은혜와 축복, 기도의 응답, 평강과 기쁨 등)”을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2) 모든 산은 낮아지며” (사 40:3-5)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서 모든 사람이 함께 볼 것이다”(5절)라며, 메시야의 탄생을 예언했습니다.
그후 700년이 지나, 약속의 말씀대로 예수님이 태어나셨습니다.
목자들은 그 아기가 메시야라는 것을 알고 여호와의 영광 앞에 엎드려 경배했습니다.
제자요한도 예수님의 얼굴에 있는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요1:14)을 눈으로 보았습니다.
베드로는 고기가 많이 잡히는 기적을 경험한 후, 예수님이 메시야임을 알고 자기가 죄인임(눅5:8)을 고백했습니다.
►제자들을 포함한 소수의 경건한 사람들은 예수님의 탄생,사역,죽음,부활을 통해서 “여호와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반면,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영광”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제자들보다 구약성경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또 하루에 3번 기도하고, 안식일과 십일조 등 모든 율법을 잘 지켰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을 보아도 구약에 예언된 그 메시야인줄 깨닫지 못했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예수님을 자칭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컫는 거짓선지자로 간주하여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 1. 그렇다면, 제자들은 예수님을 통해 메시아의 영광을 보았지만, 왜 바리새인들은 메시야를 못 알아보고, 메시야를 죽였을까요?
본문은 우리 마음 속에 “높아진 산(교만의 산)”을 깎아서 겸손한 마음을 예비하라고 말씀하십니다(4절).
그렇게 될 때, 그 겸손한 마음 속으로 여호와께서 들어오심으로써 우리가 여호와의 영광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5절).
► 즉, 바리새인들은 교만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봐도 메시야인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교만하다는 것을 2가지로 증명하셨습니다.
첫번째는 “너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요5:42), 즉 그들은 하나님보다 자기와 세상을 더 사랑했습니다.
두번째는 “너희는 서로 영광을 주고 받으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광을 추구하지 않았다”(요5:43),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기의 영광(물질,명예,권력,쾌락, 지식 등)을 더 추구했습니다.
여러분, 바리새인 성경지식이 많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도,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고 우리의 영광을 추구한다면 주님을 영접할 수 없고 주님을 만나서 깊은 교제를 나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만의 산을 깎아서, 겸손한 마음을 유지하십시오.
겸손한 사람은 “어린아이처럼”(마18:3-4) 낮아져서, 아버지만 사랑하고 의지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예배하며 만나는 것을 기뻐합니다. 또 자기의 어리석음과 무능함을 잘 알기
때문에 범사에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또 자기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면 즉시 순종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것이 겸손한 사람의 특징입니다.

■ 2. 겸손은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생기는 인격의 변화입니다.
성령의 조명하심을 따라 말씀을 읽고 받아들임으로써, 주님의 영광을 보고 주님을 만나십시오(벧전2:2,약1:21).
그래서 주님이 커질때 내가 작아지고, 주님의 영광이 커질때 내 영광이 작아집니다.
그와 같이 성령께서는 말씀을 통해 역사하셔서, 우리의 교만의 산을 깎아주시고, 예수닮은 겸손한 인격으로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1)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사 40:3-5)

■ 오늘 본문은 “만왕의 왕이신 메시야가 이 세상에 곧 오신다”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은 왕이신 예수님을 영접하기 위해서, “자기 마음에 있는 도로를 3가지 방법으로,
즉 마음의 골짜기를 메우고, 마음의 산을 낮추고, 마음의 험한 부분을 평탄하게 준비하라”는 뜻입니다.
비유하자면, 마음이 “골짜기처럼, 깨지고 부서져서” 상처를 많이 입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굉장히 자존감이 낮고, 열등감이 많고, 분노가 많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골짜기처럼 빛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어둠이 가득하고, 슬프고, 우울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마음에 큰 상처와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마음의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결과가 어떻게 될까요?
더 나아가서,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상처, 외로움, 열등감을 해결하지 못한 채 계속 살아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정답은 간단합니다. 마음의 상처가 쌓이고 쌓여서, 그들은 분노하고 폭행하고 살인하는 등 여러가지 죄를 짓게 될 것입니다.
그 결과, “서로 물어뜯고 잡아먹다가, 서로 죽이고 멸망하게 될 것”(갈 5:15)입니다.

■ 그렇다면, 마음의 상처, 외로움, 열등감 등 마음의 질병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문둥병자는 가족에게 버림받고 사람들과 격리되어 살다 보니 마음의 상처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사람들의 조롱을 받으면서, 자존감이 낮아지고 열등감과 분노가 많았습니다. 그들은 항상 외롭고 슬펐고 우울했습니다.
어느 날, 온 몸에 문둥병이 든 자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물었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고칠 수 있습니다” (눅5:12) 그는 예수님께서 진심으로 자기를 고쳐주길 원하시는지,
아니면 세상 사람들처럼 자기를 정죄하고 멀리하실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에, “주께서 원하시면”이라 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과 전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보자마자.
그가 지금까지 얼마나 외롭게 살았는지, 얼마나 상처를 많이 받았고, 얼마나 거절을 많이 당했고,
얼마나 열등감과 분노가 많았는지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불쌍히 여기셔서, 즉시 그의 몸에 손을 대시고 “내가 원하노니, 깨끗하게 되어라”(눅5:13)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문둥병이 깨끗하게 치유되었습니다.

▶여러분, 다윗은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시51:17)”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골짜기처럼 깨진 마음의 상처와 마음의 문제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문둥병자처럼 예수님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십시오.
그리고 십자가 앞에서, 아프면 아프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슬프면 슬프다고 외로우면
외롭다고 화나면 화난다고 무서우면 무섭다고 상하고 깨진 마음을 정직하게 토하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긍휼하신 예수님께서 피 묻은 손으로, 우리 마음의 상처와 외로움과 열등감과 분노와 슬픔을 어루만지실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원하노니, 너는 깨끗하게 나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시고, 우리를 치료해 주실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마음이 상한 가족들, 친구들, 이웃들의 손을 붙잡고 예수님 앞으로 인도하십시오.
그래서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골짜기처럼 깨지고 상한 마음을 치유받게 함으로써,
그리스도안에서 건강한 가정, 건강한 세상을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종말의 때에 누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가? (2)” (마 25:14-30)

우리는 달란트의 비유를 통해서 “종말을 준비하는 삶이란 어떤 것인가?”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5달란트, 2달란트 받은 종은 장사를 해서 2배의 돈을 벌었습니다.
그런데 사업을 해서 돈을 버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모든 장사에는 리스크가 있고, 큰 회사도 하루아침에 망할 수 있는 것이 사업입니다.
►5달란트, 2달란트받은 종은 망할 수도 있고 손해볼 수도 있는 위험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습니다(16절).
그래서 받은 돈을 투자하여 사업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1달란트받은 종은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혹시 사업을 했다가 망하면 주인에게 꾸중을 들을까 두려워하여, 땅을 파서 돈을 숨겼습니다(25절).

■ 우리가 “주님께서 내게 주신, 은사와 능력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사용하기 위해서는 5달란트받은 사람처럼,
“위험과 불확실성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16절)

사도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따라, 우리는 저마다 다른 신령한 선물(은사)를 가지고 있다”(롬12:6)고 말했습니다. 
예를 들면, 예언의 은사, 섬기는 은사, 가르치는 은사, 위로하는 은사, 구제하는 은사, 다스리는 은사,
긍휼을 베푸는 은사 등 수많은 은사와 재능과 능력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달란트 (은사, 재능, 능력 등)이 무엇인지” 발견하기 위해서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게 이 직업을 잘 할 수 있는 은사와 재능이 있을까? 내 성격으로 이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을까?
혹시, 좋은 결과가 없고, 열매가 없으면 어떡하나?”하는 두려움을 이겨내십시오.
그래서, 5달란트받은 사람이 새로운 사업에 도전했듯이, 위험과 불확실성에 도전하는 용기를 가지십시오.
지금까지 한번도 안 해 본 직업, 처음으로 참여하는 사역과 봉사라도 용기를 내어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우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주님께서 그 일과 사역을 이루어 주실 것을 확신하는 믿음(빌1:6)으로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실패할 수도 있는 위험한 일과 불확실한 사역에 믿음으로 도전하지 않으면,
내 안에 어떤 은사와 능력이 있는지 알 수가 없고, 내가 얼마나 변화될 수 있고 얼마나 성장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 주님은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자기의  은사와 재능을 최선을 다해 사용하고, 끝까지 충성하는 성도를 칭찬하십니다. (21절, 23절)

사람의 상식으로 생각하면, 10달란트라는 큰 돈을 벌어온 사람을 더 많이 칭찬해 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똑같이 칭찬하셨습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내가 다른사람보다 은사가 크냐,작냐? 능력이 크냐,작냐? 돈을 더 벌었냐, 못 벌었느냐?
사역의 열매가 크냐,작냐?” 서로 비교하면서/ 자기가 크면 자랑하고, 작으면 열등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사람을 서로 비교하지 않고, 크든 작든,
“똑같이 존귀한 사람, 똑같이 소중한 은사, 똑같이 아름다운 열매”로 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최고가 아니라, 최선의 노력(충성)”을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1달란트받은 종처럼, 우리가 게을러서 주님주신 은사와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면, 그것을 빼앗아 가실 것입니다.
그러니 은사와 능력을 최선을 다해 사용하시고, 맡겨주신 일과 사역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충성하는 종”이 되어 하나님나라를 세우시기 바랍니다.

“종말의 때에 누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가? (1)” (마 25:14-30)

달란트의 비유는 “주님은 어떤 사람을 착하다 하시고, 어떤 사람을 악하다고 하시는가?
선과 악을 평가하는 하나님의 기준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줍니다.

■ 주님께서 1달란트 가진 종에게 “너는 악한 종이다”라고 책망하신 이유는
그가 “주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해서 잘못된 생각과 오류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는 주님을 “굳은 사람”(24절)이라 생각했습니다.
마음이 딱딱해서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 성격이 무서워서 남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는 사람,
욕심이 많아서 수고하지 않고 곡식만 거두려는 사람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돈으로 사업을 했다가 실패하면, 벌을 받을까 두려워서, 돈을 땅에 숨겨놓았습니다.
또, 그는 주인이 편견을 갖고 불공평하게 행동하는 사람이라 생각했습니다.
주인이 좋아하는 사람에겐 2달란트, 5달란트를 주었지만, 자기는 미워해서 1달란트만 줬다고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주님의 성품과 주님의 뜻”을 전적으로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1)주님은 만물을 창조주요, 만물의 주인이십니다.

누구에게는 5달란트, 누구에게는 1달란트 주는 것을 결정할 수 있는 “절대적 주권”이 주님에게 있고,
종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교만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내 뜻대로, 주인이 행동하지 않았다. 돈을 불공평하게 나누어주었다”면서 주님을 원망했던 것입니다.
(2)그러나, 그의 생각과는 반대로, 주님은 사랑이 많으시고, 공평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십니다.
주님은 “각자의 재능대로”(15절) 나눠주었습니다.
주님은 세 사람을 똑같이 사랑했기 때문에 세 사람의 능력을 공정하게 평가해서 각 사람의 능력에 딱 맞게 나누어 준 것입니다.
(3)또, 씨를 뿌린 자가 곡식을 거두는 것이 당연하듯이, 주인이 자기 돈을 주었기 때문에 그 돈을 달라고 하는 것은 “정당한 권리”입니다.
그런데, 그는 “주인은, 씨도 뿌리지 않고, 곡식을 거두고 싶어하는, 욕심 많은 사람”(24절)이라고,
“주인의 성품”을 잘못 이해했던 것입니다.

■“내 백성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에 (죄를 짓고) 망한다”(호4:6) 했습니다.
1달란트받은 사람처럼, “주님의 성품”을 잘못 이해하고, “주님의 뜻”을 모르는 사람이 악한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모르는 그 악함(잘못된 생각)”이 출발점이 되어서, 교만한 마음이 생겼고,
주님을 원망하는 말도 하고, 게으름을 부리는 죄까지 지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내가) 악하다 한 것을 선하다 하고, 선하다 한 것을 악하다 하는 자들에게 화가 있다”(사5:20)고 말씀하셨습니다.
“선하다 악하다, 옳다 틀렸다”하는 기준은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결정하십니다.
사람의 생각이 옳고 선하게 보인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생각과 다른 생각은 “틀린 생각”이고, 나아가서 “악한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뜻, 우리의 생각, 교회의 전통, 기독교의 관습보다 더 중요합니다.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배우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분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달란트(재능과 선물)을 주셨는지 발견하고,
5달란트받은 종처럼 그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종말의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듣고,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아는 “착한 성도, 착한 교회”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가 든든히 세우시기 바랍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에 보낸 편지” (계 3:7-13)

빌라델비아는 동방으로 가는 문으로서 교통의 요지였기 때문에 인구가 많았고,
농업과 상업이 발달하여 경제적으로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술과 쾌락을 즐겼고, 사치와 과소비가 심했고, 도덕적으로 타락했습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신전과 이교적인 종교행사가 많았기 때문에 영적인 유혹이 심했습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네가 작은 능력을 가졌다”(8절)고 말씀하신 이유는 그 교회가 숫자적으로 작은 교회였고,
가난하고 힘이 없는 약자들이 많았다는 뜻입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라델비아교회는 그 열악한 환경을 이기고 영적인 유혹을 극복하면서
순수한 기독교신앙을 지켰기 때문에, 예수님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잘 지켰다”(8절앞)는 말은 “네가 가난하고 힘없는 성도들이 모인 작은 교회지만,
세상의 악한 문화와 타협하지 않고 말씀에 순종하는 행동을 했기 때문에 내가 너를 칭찬한다”는 뜻입니다.
또 예수님은 “네가 작은 능력을 가졌지만,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다”(8절뒤)고 칭찬하셨습니다.
성도들이 유대인들의 핍박과 공격(9절앞)을 이겨내면서, 믿음을 지키고 교회를 지켰다는 뜻입니다.
더 나아가서, 그 교회는 “성경적인 교회가 반드시 해야하는 5가지 의무”(행2:42-47)를 다하기 위해 충성했을 것입니다.
즉 예배를 뜨겁게 드리고, 말씀을 열심히 배우고, 소그룹으로 모여 사랑의 교제를 나누고,
교회와 세상을 헌신적으로 섬기며, 복음을 열심히 전파했을 것입니다.
►그결과,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예수와 믿음)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11절)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유혹과 핍박을 이기며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하는 성도와 교회에게
예수님께서 반드시 면류관의 칭찬과 상급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비록 능력은 작고 약하지만 예수를 의지하는 믿음이 있는 성도와 교회는 강한 유혹과 핍박을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주님은 가난한 자들의 친구이시며, 약한 자들의 보호자이시며, 핍박받는 자들의 피난처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가난하고 궁핍하다고 걱정하지 말고, 돈을 벌기 위해서 세상의 죄악과 타협하지 마십시오.
또 능력이 없고 약하다고 절망하지 말고, 무슨 일에 실패했다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또, 어떤 사람으로부터 심한 핍박을 받았다고 신앙생활을 중단하거나 믿음을 배반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힘들고 약할 때 “십자가에 죽기까지 아버지께 순종하셨고 부활의 능력으로 승리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주 예수”(엡1:21-22)를 의지하는 믿음으로 끝까지 인내하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능력을 주셔서 어려운 시험을 이기게 하시고, 우리를 핍박하고 공격하는 자들을 무릎 꿇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얼마나 지켜주시는지를 온세상에 보여주실 것입니다(9절뒤, 10절).
►여러분, 죄와 죽음에서 승리하신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가 되셔서, “그 승리의 능력과 영광”을 이세상 모든 성도들과 교회에게 주셨습니다.
비록 성도는 약할 수 있고 교회는 작을 수 있지만,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와 성도들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진리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빌라델비아교회처럼, “약하지만 강한 성도, 작지만 강한 교회”가 되어, 면류관을 받고 하나님나라의 기둥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의 값” (레 27:1-7)

성경에는 하나님이 “사람의 몸값”을 계산하신 사례가 3번 나옵니다.

첫번째로, 소가 남종이나 여종을 받아서 죽였다면, 생명의 대가(몸값)으로 은 30세겔을 주어 보상하라(출21:32)고 했습니다.
그래서 통상 노예의 값은 은 30세겔이었습니다.
두번째로, 20살 이상 남자는 생명의 속전(몸값)으로 성전세로 반세겔을 내라고 하셨습니다.
성전세는 생명을 구원해 주신 은혜에 감사하여 드리는 생명값입니다.
그래서 부자나 가난한 자, 능력있는 자나 없는 자, 나이 많은 자나 적은 자나, 차별없이 평등하게 드리는 것입니다(출30:15).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신자를 똑같이 소중하고, 존귀한 생명으로 보시기 때문입니다.

■ 1. 그래서 성전세는 “모든 신자가 의무적으로 드리는, 최소한의 몸값(최소한의 헌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오늘날 “Sunday Christian”처럼, “1주일에 1번 주일예배만 드리면, 구원받은 자로서
내가 해야 할 의무와 헌신을 다 드린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집에서 말씀도 안 읽고 기도도 안하고 가정예배도 안 드립니다.
교회에서는 어떤 봉사도 하지 않으면서, “최소한의 헌신”으로서 주일예배만 드립니다.  

■ 2. 그러나 어떤 신자가 자기를 하나님께 드리는 서원(맹세,헌신)을 했을 경우,
하나님은 그 사람의 나이, 성별, 능력(노동력)을 기준으로 몸값을 다르게 정하셨습니다.
서원이란, 어떤 사람이 “구원의 생명 뿐만 아니라, 물질 능력 시간 가정 자녀 직장 등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닫고, 자기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자발적인 헌신”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구원의 생명값인 성전세(반세겔)을 넘어서서, 각자 자기가 받은 은혜에 비례하여
최대한의 속전(생명값)을 드려라”는 뜻에서, 몸값을 다르게 정한 것입니다.
즉 30세 남자는 성전세(반세겔)만 내도 되지만, 자신을 다 드리며 헌신하기로 서원했다면 50세겔(성전세의 100배)를 드려야 합니다.
►남들보다, 일할 수 있는 능력, 몸이 건강한 축복 등 하나님의 은혜를 더 많이 받은 사람에게,
“더 많은 것을 내놓고, 더 많이 헌신하라”고 요구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율법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예수님의 참제자가 되기로
서원한 신자들이 하나님깨 자발적으로 드리는 “최대한의 헌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악한 청지기의 비유”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많이 받은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며, 많이 맡은 사람에게는 많이 내놓으라고 할 것이다”(눅12:48).
만일 우리의 믿음이 어린아이 같아서 아직도 구원받은 은혜만 알고 있다면,
성전세(반세겔)을 드리듯이 “최소한의 물질, 최소한의 헌신”만 드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여 구원의 은혜 뿐만, 가정과 자녀를 돌보아 주시는 은혜,
물질을 공급해 주시는 은혜, 직장과 일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 은혜,
말씀을 깨닫는 은혜, 기도를 인도해 주시는 은혜, 교회의 예배와 사역 가운데 함께 해 주시는 은혜를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성전세만 드리듯이 주일예배만 드리는 “최소한의 헌신”을 넘어서서,
각자 받은 은혜 만큼 하나님께 자기 전부를 드리고 “최대한 헌신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특히 하나님께 받은 은혜(물질,능력,시간 등)을, 가난하고 병들고 외롭고 어려운 이웃과 나누시기 바랍니다.

“희년의 기쁨” (레 25:8-12)

오늘본문에 나오는 희년에 관한 율법은 19세기 미국의 노예해방법과 같은 것입니다.

희년은 안식년이 7번 지난 후, 그 다음해(50년째 되는 해)를 말합니다.
그런데, 희년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온세상에 자유를 선포하는 것”입니다(8,10절).

■ 1. 희년에는 다음의 세 가지가 자유를 얻어 처음 있던 곳으로 되돌아갑니다.
(1)땅이 처음 주인에게 돌아갑니다(10절앞).
땅을 판 사람이 돈이 없고,
자기 대신 땅을 사 줄 수 있는 친척(기업 무를 자, Redeemer)이 없다 할지라도, 희년까지 기다리면 자기 땅을 찾을 수 있습니다.
(2)종(노예)가 자유를 얻어 가족에게 돌아갑니다 (10절뒤). 종은 최대 6년동안 일하다가 안식년이나 희년이 되면 풀려납니다.
(3)세번째는, “잃어버린 기쁨”이 회복됩니다. 가난해서 조상이 물려준 땅을 판다면 마음이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그런데 희년이 되어 그땅이 다시 돌아오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또, 돈이 없어서 다른 사람의 노예가 되었다면, 그는 주인에게 묶이고 매인 몸이 됩니다.
수년 동안 부모와 처자식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상태에서 힘든 일을 하니까, 그 마음이 얼마나 비참하겠습니까?
그런데, 희년이 되어 노예에서 해방되어 가족에게 돌아가게 된다면, 그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그래서, 희년이 시작되는 날에는 온세상에 뿔나팔을 크게 불었습니다(9절).
그러면 “잃어버린 땅/ 잃어버린 가족/잃어버린 기쁨”을 회복한 사람들이, 다 함께 일어나 환호성을 지르고 춤을 추었던 것입니다.

■ 2.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3,500년 전에 만드신 “희년의 율법”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영적인 의미가 있을까요?
희년의 나팔은 대속죄일(온 백성이 죄를 회개하는 날)에 불었습니다(9절).
사람이 회개하지 않고 죄의 종으로 살면 어떠한 자유와 기쁨도 없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는 죄를 지은 후, 에덴동산(하나님의 땅)에서 쫓겨났습니다.
또, 하나님과 자녀라는 가족관계가 깨져서 하나님을 만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사탄이 권세 잡은 땅에서 죄의 종이 되어 슬픔과 고통 속에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희년의 나팔소리가 온세상에 울려 퍼졌습니다(눅4:18-19).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 죄를 대속하시고, 우리의 땅과 권리를 회복시켜주는 구속자(Redeemer)가 되셨습니다.
그 결과, 누구든지 예수를 믿기만 하면 죄의 속박과 매임에서 자유케 되어 하나님의 나라(에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는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땅(천국)” 안에서 살고,
“잃어버렸던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잃어버렸던 기쁨”을 누리며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희년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천사의 나팔소리가 울리면 희년이 완성되어 우리는 천국에서 완전한 자유와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희년은 십자가의 은혜요, 희년의 기쁨은 복음의 기쁨이요, 희년의 나팔소리는 천국의 나팔소리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사명을 잘 감당하십시오.
그러면, 예수님이 주시는 희년의 기쁨과 자유를 충만하게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요17:13).
또 불신영혼들과 방황하는 신자들을 예수께로 인도하여, 그들이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 희년의 자유와 기쁨을 누리며,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등불을 밝혀라” (레 24:1-4)

저녁6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까지, 제사장은 성전안에 어둠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등불을 켜야 합니다.
기름을 공급하여 등불이 꺼지지 않게 하는 것이 그의 의무입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8:12)
등불이 어둠을 밝혀 주듯이, 예수님은 “세상의 빛”으로 오셔서 죄악으로 가득한 어두운 세상을 환하게 밝혀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말씀에 나오는 등불을 비유하자면, “예수의 빛, 복음의 빛”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영적인 어둠 속에 살던 사람이 복음의 빛을 받으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요?

■ 1. 복음의 빛은 “지식의 어둠(생각의 어둠)”을 몰아냅니다. (고후 4:4, 6)
이 시대에는 이 세상의 신(사탄)이 주는 세속적인 가치관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4절).
①성공주의, 맘모니즘(돈을 하나님보다 사랑하고 숭배함), 자기중심주의 (이기주의)가 있었습니다.
②또, 도덕적 상대주의가 있습니다. “절대적으로 옳은 도덕 기준이 없기 때문에, 각자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면 된다”는 것입니다.
③또, 종교적 다원주의는 “수많은 신이 존재하기 때문에, 아무 신이나 믿으면 된다”라고 주장하며,
무신론은 “신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독교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와 같은 세속적인 생각(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은 “어두운 생각”에 붙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무리 복음을 설명해 줘도, 복음을 거절하고 예수를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미래의 어느날, 어둠 속에 빛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복음의 빛”을 비춰 주실 것입니다(6절)
그러면, “예수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알 수 있는, 지식의 빛”이
그 사람에게 들어가서, “사탄이 준 어두운 생각들”을 깨뜨려버릴 것입니다 (고후10:5).
그 결과, 복음의 진리를 이해하는 지식이 생기고, 예수를 믿는 믿음이 생겨서, 구원받는 날이 올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신은 신자들의 지식 속에 있는 복음의 빛을 몰아내고,
어둠의 지식을 다시 집어넣기 위해 끊임없이 공격합니다.

그러므로 사탄이 주는 “지식의 어둠”인 진리를 대적하고 하나님을 의심하는 생각과 세속적인 가치관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빛(성경말씀)”으로 가득 채우시기 바랍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  

■ 2. 두번째로, “예수의 빛”은 “감정의 어둠(부정적인 감정)”을 몰아냅니다.
한국인의 43.5%가 만성적으로 울분을 느낀다고 합니다.
자신을 보면 돈과 능력이 없어서 답답하고, 세상을 보면 불공평해서 화가 납니다.
►이와 같이 세상에는 불의, 불공평, 폭력, 죄악이 난무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부정적인 감정”(울분,걱정,슬픔,절망,상처, 아픔)을 껴안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는 “예수의 빛”이 있기 때문에, 탈출구가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16:24)
우리는 자기와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눈을 들어 “빛 되신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십자가 앞에서 기도하며, 마음의 억울함,분노, 걱정, 슬픔,상처,아픔 등 어두운 감정을 다 쏟으십시오.
그러면 예수의 빛이 들어와서,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걱정이 변하여 평강이 되는 복음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