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반응하는 삶” (마 11:16-19)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매순간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사는 것은 생명처럼 소중한 것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은 우리에게 계속해서 말씀하시길 원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하시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 오늘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재미있는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16-17절)
이쪽 아이들이 피리를 불어주는데, 저쪽 아이들은 피리소리를 듣고서도 무관심하게 춤추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장례식장에 가서 슬픔을 표현하는 놀이로 바꾸었습니다.
이쪽 아이들은 슬픈 노래를 부르는데, 저쪽 아이들은 울지도 않고 아무 반응도 없이 자기 뜻대로 행동했습니다.  

■ 예수님은 세례요한과 예수님에 대해서 바리새인과 종교지도자들과 백성들이
무관심하고 반응하지 않는 백성들을 아이들의 놀이에 비유한 것입니다. (18-19절)
아이들이 피리를 불듯이, 선지자 요한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라고 외치며, 물세례를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대하신 반응은 많은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요한의 외침을 듣고 회개하고 세례받는 것이지만,
그들은 “요한은 귀신들린 사람”이라며 그를 “비난하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말씀을 듣고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구원받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올바로 반응하지 않았고, 오히려 예수님을 핍박하다가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여러분,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반응하지 않는 아이들처럼,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그런 식이 아닌가?”,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하나님께서 내게 뭔가 열심히 말씀하시는데, 내가 듣는 귀가 없어서 듣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또, 성령님께서 내게 뭔가를 열심히 보여주시는데, 내가 보는 눈이 없어서 깨닫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더 심각한 문제는, 내가 분명히 하나님의 뜻을 듣고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결단력이 없고 게을러서 하나님의 뜻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이쪽으로 가라고 하시는데 나는 저쪽으로 가고 있고,
하나님은 이것을 하라고 하시는데, 나는 저것을 하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 1. 먼저, 하나님의 음성과 성령님이 주시는 메시지를 정확하게 들으십시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지금 내 마음과 내 환경이 어떠한지, 내 인생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가장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유익한 것을 가르쳐주시고,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길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큐티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인도하심을 받으십시오.
목장식구들이나 성도들의 입을 통해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환경의 변화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 2. 완악한 마음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말씀을 잘 듣고, 순종으로 반응하십시오.
세상일에 대한 걱정근심, 돈과 물질에 대한 욕심, 성공을 향한 자기 계획,
좀더 편하게 살고 싶다는 이기적인 생각은 우리의 마음을 완고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말씀을 올바로 듣지 못하게 하고, 순종하지 못하게 만듭니다(마13:14-15).
►여러분, 성령의 도우심과 은혜를 받아 완악한 마음을 버리고, 말씀을 올바로 듣고 순종으로 반응하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죽을 수 있는 용기” (고전 15:31-34)

본디오 빌라도는 부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예수님에게 사형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약 6년 후, 그는 총독의 직위에서 쫓겨나서 부과 권력을 다 잃어버리고 비참하게 살다가,
황제가 내린 사형판결 소식을 듣고 자살했습니다. 오늘날에도 빌라도처럼 “영적인 세계”
(하나님이 있는지? 영혼이 있는지? 천국과 지옥이 있는지? 등)에 대해서 관심이 없고,
오직 이세상에서 먹고 마시고 즐기는 일만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세상에서 성공하여 권력과 명예를 얻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돈을 더 많이 벌고, 더 좋은 집에서 살고,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인생의 큰 자랑거리로 삼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세속적 가르침에 “속지 말라”고 합니다.

■ 1. “죽으면 끝이기 때문에, 오늘 하루 마음껏 먹고 즐기고, 성공과 권력을 누리면서 살자”는
생각은 세상이 주는 거짓말, 사탄이 주는 속임수이니 속지 마십시오. (32절)
바울은 에베소에서 핍박 받을 때를 회상하면서 말했습니다.
“내가 맹수같이 무서운 사람들에게 핍박을 받으면서도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한 것은 인간적인 동기에서 (내가 잘 먹고, 잘 살고, 더 높아지기 위해서) 한 것이 아니다.
악한 동무들의 말(하나님이 없고, 죽으면 끝이고, 죽은 사람은 살아나지 않는다는 말)에 속으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섬기는 착한 행동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반대로, 자기의 욕심과 이기심을 추구하는 악하고 이기적인 사람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눅12장)처럼, 자기 욕심과 재물과 쾌락과 이기심을 위해서 살면서,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않고 하나님나라를 위해 살지 않는 사람은 빌라도처럼 악하고 허무하고 저주받은 인생을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렇게 살지 않았습니다.

2.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하나님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자기의 몸을 죽이고 자기의 소유를 아끼지 말고 사용하십시오. (31절)
바울은 눈에 보이는 것(육체, 재물, 세상 즐거움 등)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영혼, 하나님, 하나님나라 등)은 죽지 않고 영원하다(고후4:18)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세상에 잠깐 살면서 육체가 잘 먹고 마시고 즐기고,
재물과 권력을 가지는 것을 배설물(빌3:8)처럼 여겼습니다.
오히려 천국에서 하나님을 만났을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주시는 면류관과 상급과 칭찬을
받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했고, 그것이 “인생의 목적”이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제자를 섬기기 위해서 “자기 몸”을 아끼지 아니셨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기 몸”을 죽이신 것을 닮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님처럼, “자기 몸과 욕심”을 죽이면서, 교회와 성도들을 잘 섬겼습니다.
그는 “내 몸은 부활할 것이기 때문에, 힘들어도 괜찮고 아파도 괜찮고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힘들 때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함께 하고 계심을 믿었고, 천국에 가면 예수께서 위로하시고 칭찬해 주시리라는
소망을 가졌습니다. 그 결과, 담대한 용기를 갖고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외치면서, 무서운 고난과 핍박도 이겨냈던 것입니다.
►여러분, 바울처럼 “하나님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자기의 몸과 자기의 가진 것”을 아끼지 마십시오.
“나는 날마다 죽습니다, 나는 죽어도 좋습니다”라고 믿음의 선포를 하면서,
몸이 아프고 힘들어도 하나님을 잘 섬기고, 물질과 시간을 바쳐서라도 하나님 주신 사역을 잘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보라, 너희의 왕이로다” (요 19:14-20)  

사탄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버지”(요8:44)입니다.
사탄은 뱀의 모습을 하고 이브를 찾아가 “선악과를 먹어도 절대 죽지 않을 것이다”(창3:4)고 거짓말했습니다.
아담과 이브는 속아서, 선악과를 따먹는 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에덴동산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빙빙 도는 불칼”(창3:24)을 세웠습니다.

►그결과 영적으로 볼 때 두 개의 나라로 분리됐습니다.
불칼의 한 편(에덴동산)에는, 하나님이 왕이 되어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천국)가 있고, 생명나무가 있어서 영생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편에는, 사람보다 먼저 죄를 지어 하나님으로부터 쫓겨난 사탄이
왕이 되어 통치하는 사탄의 나라가 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아담의 후손이기 때문에,
사탄의 나라에서 태어나, 사탄이 창조한 세상의 악한 문화 속에서 죄를 지으면서 살다가,
결국엔 죄에 대한 심판을 받아서 죽습니다(롬5:12).
그러므로 사탄의 나라는 죄와 죽음이 가득한 나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담과 이브를 쫓아내실 때 사탄에게 다음과 같은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미래에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어떤 사람(그리스도)이 사탄의 머리를 박살내서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것이다.
그러나, 너 사탄은 그의 발꿈치만 상하게 할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창3:15, 원시복음)

■ 마침내, “때가 차매”, 예수님은 그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을 따라
여자의 몸으로 태어나서 세상왕인 사탄의 머리를 때리기 위해 십자가에 올라가셨습니다(요19:17-18)
사탄이 세상의 왕이 되어 사람을 통치할 수 있는 힘이 어디에서 나옵니까?
사탄은 인간을 노예로 만들기 위해 어떤 치명적인 무기를 사용할까요?

▶1. 사탄은 “죄”라는 무기를 사용하여, 인간을 다스립니다.
사탄은 사람이 죄를 짓도록 유혹하고, 하나님과 멀어지게 해서, 자기만 섬기는 노예로 만듭니다.
특히 죄 중에서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가 왕이 되어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을 따라 자기 마음대로 살면서 재물,권력,성공,쾌락 등을 추구하는 사람은 사탄의 노예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같이 사람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지 못하게 하고(고후4:3),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고 죄를 짓게 하는 존재가 바로 세상 왕, 사탄이기 때문입니다.

▶2. 사탄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무기를 사용하여, 인간을 노예로 만듭니다.
사탄의 나라에는 생명나무가 없기 때문에 영생을 얻지 못하고, 죄인은 심판을 받아서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사탄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자극하여(굶어 죽겠다,
힘들어 죽겠다, 아파 죽겠다, 미워 죽겠다 등등), 사람을 노예로 만듭니다(히2:15).
심지어 사탄은 예수믿는 사람도 죄의 길로 유혹하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줘서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듭니다. 

■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사탄의 무기인 “죄와 죽음”을 빼앗고, 승리하셨습니다.
그는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지시고, 우리의 죽음을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죄와 사망의 사슬에서 우리를 풀어주셔서, 사탄의 노예였던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우리의 왕은 사탄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이고(19절),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왔습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죄와 죽음의 두려움을 이기고, 하나님나라를 확장함으로써,
만왕의 왕이신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십자가복음 외에 다른 복음은 없다” (갈 1:4-92)

사람은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율법을 다 행할 수 없는 죄인입니다.
그래서 율법의 노예가 되어 율법이 주는 죄책감,두려움,고통 속에 시달리다가 죽을 수 밖에 없고,
심판을 받아 지옥에 가야 할 운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사람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율법의 요구와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셨습니다(4절).
그 결과, 예수를 믿는 사람은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을 받아, 의롭다칭함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여러분, 이와 같이, 율법은 죄의 짐을 무겁게 하지만, 십자가는 죄의 짐과 인생의 고통을 내려놓게 하여 우리에게 자유를 줍니다(롬8:1-2).
그래서 피묻은 십자가는 우리죄를 대속하신 축복의 증거가 되며,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생과 천국을 주시는 복된 소식(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지역을 다니며, 이러한 내용의 “십자가복음”을 열심히 전했습니다.
그래서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서, 그들이 십자가복음을 버리고 다른 복음을 따른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6,7절).

■ 1. “행위복음”(Doing Gospel)은 다른 복음, 거짓 복음입니다.
유대인 율법교사들은 “구원받기 위해서는, 예수를 믿는 것 뿐만 아니라 율법도 잘 지켜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남자는 할례를 받아야 하고, 돼지같이 부정한 동물을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복음을 믿고 율법으로부터 자유했던 성도들이 다시 옛날처럼 율법의 노예가 된 것입니다(갈3:3). 
►여러분, 율법을 지키고, 착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이신칭의” 즉,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엡2:8), 의롭다함을 받아서 구원을 받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만드신 유일한 “구원의 방법이요, 복음의 원리”입니다.
그런데 믿음 이외에 “할례를 받거나 어떤 행동을 해야지 구원을 받는다”며 하나라도 덧붙이는 것은 모두 “가짜 복음/거짓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경건의 훈련(말씀,기도,예배 등)을 통해서, 그 구원의 방법과 복음의 정신에 합당한 신앙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자기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행위를 자랑하지 않고, 전적으로 성령이 주시는 은혜를 받아서 믿음으로 사십시오.
육체의 즐거움과 일상의 분주함을 내려놓고, 그렇게 복음적인 삶을 살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 2. “번영복음”(Prosperity Gospel)은 가짜 복음, 거짓 복음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희생과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희생에 감사하며 구원에 감격하기 때문에,
예수의 제자로서 좁은 길을 걸으며 자기를 희생하고 죽이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목적이요, 우리가 살아가는 유일한 목적입니다.
그러나 율법교사들은 자기 육체가 더 편안해지고, 자기 일이 더 잘 됨으로써,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가 영광 받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6:12-13).
이것을 “번영복음”이라 하며, 이것은 가짜복음, 거짓복음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그들처럼 신앙생활 하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자기의 유익과 부와 성공과 즐거움을 추구하지 마십시오.
반대로 예수님처럼 자기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고 희생하여 섬김으로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돌리십시오.
그래서 십자가복음에 합당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남을 대접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히 13:2)

아브라함은 “Hospitality”(환대, 환영하여 대접하는 것)을 잘해서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는 나그네를 보고 기쁘게 맞이하여 엎드려 절했습니다. 송아지 고기, 떡, 우유 등 풍성한 음식을 만들어 대접했습니다.
알고 보니, 하나님께서 천사 둘을 데리고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1년 후에 이삭을 낳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기적이고, 욕심이 많고, 남에게 베푸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아브라함처럼 다른 사람을 기쁘게 환영하고, 풍성하게 대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 1. 손님을 환영하기 위해서는, “내 집의 문”을 열어야 하듯이, 우리는 먼저 타인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은 곧 남을 환영하여 기쁘게 맞이해 주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남을 찾아가서 인사를 하고, 옆자리에 앉아주고, 말을 거는 것입니다.
타인에게 말을 거는 것은 “나는 그리스도를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에게 마음의 문을 열었습니다.
당신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나는 당신에게 관심과 사랑이 있습니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을 몇 번이나 봐도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말도 걸지 않거나, 또는 상대방이
열 마디 말을 걸며 관심을 보였는데도 자기는 한 마디 말로 대화를 끊어버리는 것은, 곧 “나는 내 생각으로 꽉 차 있고,
내 할 일도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 별로 관심이 없으니, 가까이 오지 마십시오”라는 뜻입니다.
성령의 9가지 “인격의 열매”는, 하나님의 성품이요, 예수님의 인격인데, 신앙이 성장할수록 더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그 열매에는 특히 자비(Kindness,친절함)와 온유(Gentleness,상냥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차갑고 무뚝뚝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도, 예수님을 닮으면 자비롭고 온유한 인격으로 변화됩니다.
►그 결과, 타인에게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친절하게 관심을 가지고, 상냥하게 대화를 나누면서,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 2. 마음의 문을 열어 친구가 되었다면, 다음엔 “돈의 문(돈지갑)”을 열어야 합니다.
돈을 써야지, 손님에게 먹을 것, 마실 것을 사주면서 잘 대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틴 루터는 “그리스도인은 마음의 회심, 삶의 회심 뿐만 아니라, 돈지갑의 회심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수넴여인은 엘리사가 나그네처럼 그 지역을 방문할 때마다 자기 집으로 초청하여 음식을 대접했습니다.
자기 돈을 들여 그에게 작은 방을 지어줬고 책상, 의자, 침대까지 넣어주었습니다.
그 결과, 엘리사가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담아서 그 가정을 축복하여 아기를 낳게 했습니다.
또 그 아기가 소년이 되어 갑자기 병들어 죽었을 때, 엘리사가 즉시 달려와서 죽은 아들을 살려주는 기적을 행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돈과 재물을 주신 것은 우리가족끼리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돈을 사용하여 다른 사람을 잘 섬기고 대접하라는 뜻입니다(눅16:9).

예수님은 “남에게 대접을 받고 싶은 그대로, 남을 대접하라”(눅6:31)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고 섬기기 위해서 지식과 능력과 목숨까지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것은 내 꺼야, 이 돈은 내 돈이야”라고 생각하는 이기심을 버리고,
돈을 사용하여 친구를 만들고, 그들을 먹이고 입히고 잘 대접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예수의 피로 열어주신 새로운 산 길” (히 10:19-20)

■ 1.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열어주신 그 길은 “살 길, 생명의 길”(Living way)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언약궤는 죄인이 볼 수 없도록 휘장을 쳤습니다.
1년에 1번, 대제사장만이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휘장이 찢어져, 성도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열렸습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십자가의 피로 우리의 죄를 씻어주신 후,
우리의 손을 잡고 하늘나라 지성소에 계신 하나님앞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 아들이 너의 죄를 대신해서 피흘려 죽었기 때문에,
너는 더 이상 죄인이 아니며 너는 죽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다.
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언제든지 내 보좌앞에 나와서 교제를 나누고, 은혜를 받아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생명의 주관자이시며, 생명력(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더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하나님의 성전에 담대히 들어가 하나님을 만나면, 우리의 생명력이 더욱 강해지는 것입니다(19절).
하나님의 은혜가 능력이 되어 인생의 온갖 어려움과 상처와 질병 등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4:16).
그러므로 은혜의 방편인 “말씀,기도,예배”를 통해서, 생명의 길로 걸어가 하나님을 자주 만나십시오.
►특히 “은혜의 3가지 방편”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공동체 예배”입니다.
예배는 사람중심이 아니라, 그리스도중심적인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비록 연약하고 부끄럽고 죄로 얼룩진 모습이라 할지라도, 예수의 피와 십자가의 의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십시오.
예배의 형식과 분위기 또는 자기자신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오직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과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존경하는 경외심으로 예배를 드리십시오.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거룩하심을 느끼면서 찬양하고, 가장 큰 열심으로 기도하고, 가장 큰 겸손으로 설교를 듣고,
가장 큰 두려움으로 죄를 뉘우치고, 가장 경건한 마음으로 예배의 순서순서마다 마음을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은혜의 강물로 온 마음이 흠뻑 적셔지고 하나님의 영광의 빛으로 채워짐으로써,
인생의 고통과 세상의 유혹을 이길 수 있는 생명력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2. 예수께서 열어주신 그 길은 “새로운 길, 새언약의 길”(New way)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피로 단번에 우리의 죄를 씻어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더이상 옛언약(율법)에 따른 속죄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결과 죄인에게는 거룩하신 성령님이 들어갈 수 없지만, 우리는 예수를 믿는 순간 
“의롭다하심”을 얻었기 때문에, 우리안에 성령님이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옛언약은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셨지만, 새언약은 예수를 통해 성령을 주심으로 율법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은혜)까지 주셨습니다(렘31:33, 겔 36:27).
여러분, 예수의 피로 열어주신 새로운 길을 걸어서, 마음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십시오.
그리고 성령이 주시는 은혜 위에 은혜를 계속 받아서,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의 계명과 말씀에 더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순종이 곧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예배를 마치면, 가정과 일터와 세상으로 흩어져서 범사에
“순종의 예배, 삶의 예배”로 이어가시길 바랍니다(롬12:1).

“십자가복음은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고전 1:21-24)

불교는 깨달음(해탈), 힌두교는 금욕, 이슬람교는 선행, 그 외 세상의 많은 종교들은,
“인간의 노력과 행위를 통해서, 구원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지혜에서 나온 구원의 방법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인간의 노력과 행함이 아니라, 십자가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합니다.
심지어, 예수를 믿는 믿음, 그 자체도 “하나님이 인간에게 은혜로, 값없이, 공짜로 주신다”고 말합니다.

■ 십자가복음은 인간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지혜(방법)입니다(23절앞).
세상에 의인은 한 사람도 없고(롬3:10),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가 없습니다(롬3:23).
그결과, 죄에 대한 대가(벌)을 받아서, 죽을 수 밖에 없고,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운명입니다(롬6:23).
이와 같이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지혜가 없기 때문에, “행함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주장은 진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죄인)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오묘한 지혜를 발휘하셨습니다(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아들을 이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모든 죄를 대신하여 지시고, 인간의 죽음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십자가복음을 믿기만 하면, 나의 죄는 예수님께 전가되고 예수님의 의는 내게 전가됩니다.
그결과,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칭함을 받아서(칭의),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받고, 영생과 천국을 얻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입니다(21절).

■그러나 인간의 지혜로는 하나님의 지혜를 이해하기 어렵고, 믿기 어렵습니다.(21절앞)
유대인들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를 걸림돌로 여겼고, 헬라인들은 복음을 어리석게 여겨서 복음을 거절했습니다(22,23절).
이 세상의 신(사탄)이 그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 복음의 빛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고후4:4).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함을 받은 사람은 십자가복음을 들었을 때,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십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너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음을 믿어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
예수님을 마음속에 영접함으로써, 죄에서 구원해주시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경험합니다(24절, 18절).
►여러분, 십자가복음을 믿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고후4:6)을 깨닫고 믿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듣고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합니다. 예를 들면,
죄인이 되어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나를, 하나님이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리시고(인내),
불쌍히 여기시고(긍휼), 사랑하셨는지(사랑)를 깨닫고 감격합니다. 또, 나를 죄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얼마나 고통을 당하셨고 피를 흘리셨는지(희생, 섬김)를 느끼고, 감사의 눈물을 흘립니다.
“왜 나를 택하셔서, 복음을 듣게 하시고 믿게 하시고 구원을 받게 하신 것인지?”
감격하여 목이 메입니다(복음을 적용하시는 성령의 은혜).
►이와 같이, 십자가복음에는, 하나님의 속성(하나님의 인내,긍휼,사랑,희생
,용서,공의,은혜,지혜,능력 등)이 나타나서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복음을 믿고 하나님의 영광을 이미 받았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구원의 증거”입니다.

“흘러 떠내려가지 않는 신앙인” (히 2:1-4)  

히브리서는 초대교회의 유대인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그들은 기독교로 개종한 후, 유대인들로부터 극심한 핍박을 받았습니다.
매를 맞고 감옥에 가고 죽임을 당했고, 출교 되면 유대인공동체를 떠나야 했기 때문에 큰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 결과, 어떤 사람들은 배교하여 유대교로 되돌아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복음의 진리를 의심하며 “옛날처럼, 성전에 가서 제사 드리는 것이 구원의 방법이 아닐까?”라고 생각했습니다.

►말하자면, 핍박과 고난을 견디기 힘들어서 믿음을 버리거나, 십자가복음에서 떨어져 나가거나, 구원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믿음의 배가 계속 흔들리다가, 마침내 안전한 항구(구원의 주 예수, 하나님)을 떠나 떠내려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조심하라”(2:1)는 경고의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기독교 신앙에서 흘러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1.우리는 “들은 것(하나님의 말씀,복음의 진리)”를 깊이 깨닫고 묵상해야 합니다(1절).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 죄를 씻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창시자와 부활의 첫열매가 되셨고,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다 하심으로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나라(천국)으로 우리를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십자가복음을 깊이 묵상함으로써 신앙의 사도요 대제사장 예수를 깊이 생각하십시오 (3:1절).
우리가 항상 예수를 생각하면서 “큰 구원의 은혜” (3절)에 감사하는 마음을 유지할 때,
우리의 마음과 눈이 예수님을 떠나 흘러 떠내려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범죄함(죄짓기)는 “흘러 떠내려가는 신앙”입니다(2절a).
만일 우리가 계속해서 죄를 짓고 죄책감도 느끼지 않고 회개도 하지 않는다면,
우리 마음이 예수님을 떠났고 “십자가 복음, 구원의 은혜”를 떠나서 “죄악의 강”을 따라 떠내려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여러분, 복음 안에서 성령이 주시는 “새로운 마음, 각성된 양심”을 받아서, 죄를 죽이며 거룩한 성화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죄짓지 않는 “거룩한 삶”이야말로, 우리의 마음이 흘러 떠내려가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첫번째 증거입니다.

■ 2.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서, 그리스도에 뿌리를 내리고(믿음)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우리가 복음을 믿고 구원을 받았다면, 우리의 생각,감정,행동,삶의 목적 등 모든 것이 예수님에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골2:6-7).
예수님을 닮아서,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가르침 받은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굳게 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십자가복음에 믿음의 뿌리를 두고 말씀에 순종한다면,
세상의 헛된 철학,속임수,유혹을 받아도 떠내려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불순종하는행위”는“떠내려가는신앙”입니다(2절a).
유대인성도들처럼, 우리환경이어렵다고몸이아프다고능력이없다고,
하나님을원망하거나십자가복음을믿지않거나말씀에순종하지않는사람은 “불신앙과불순종의강”을따라떠내려가는신앙인입니다.
►여러분, 핍박과고난이오더라도, 위로와도움을주시는주님(히2:18, 4:15)을 끝까지
믿고 순종함으로“흘러떠내려가지않는신앙인”이되시기바랍니다

“성숙한 그리스인 되기” (딛 1:5-6)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내 양을 치라”는 주님주신 사명을 따라 다른사람을 잘 섬김으로써 교회를 건강하게 세워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장로와 같은 교회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3가지 자격조건을 살펴봄으로써,
“우리가 좀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배우고자 합니다.

■ 1.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경건한 삶을 살 때까지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 사도(제자)로서의 책임”(딛1:1)이라고 말했습니다.
►“경건”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세상의 죄악과 구별되어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을 읽고 배우고 순종함으로써 경건한 삶을 살 때 “책망할 것이 없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경건한 그리스도인”에게는 몇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아나니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알고, 순종했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고넬료는 항상 기도하며 선한 일(구제)을 했고, 시므온은 성령충만하여 아기예수를 만났습니다.
►여러분,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증거는 경건의 모양이 아니라 “경건한 삶”입니다.
말씀, 기도, 예배라는 경건의 훈련을 통해, 6가지 특징(말씀에 대한 지식,
순종, 기도, 선행, 성령충만, 칭찬)을 나타냄으로써, “책망한 것이 없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 2.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배우자를 사랑함으로, “배우자를 하나님앞으로” 인도합니다.
교회 장로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오직 한 아내만 사랑하면서, 이혼하지 말고 평생 함께 살아야 한다”고 바울이 권면했습니다.
남편과 아내는 결혼하는 순간 육체적으로, 인격적으로, 영적으로 한 몸이 되기 때문입니다(창2:24, 결혼언약).
►그러므로 여러분, 남편과 아내가 한마음이 되어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믿지 않는 배우자를 위하여 눈물로 중보기도 하십시오.
또 남편과 아내가 비슷한 속도로 신앙이 성장할 수 있도록, 믿음이 약한 배우자를 도와주십시오.
그래서 남편은 “아내를 하나님앞에” 바로 세우고, 아내는 “남편을 하나님앞에” 바로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하여,
그 목표를 이룰 때까지 서로 사랑하며 인내하며 섬기시기 바랍니다.

■ 3.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자녀를 “믿는 자녀”로 양육합니다. (자녀교육의 목표)
바울은 자녀들이 도덕적으로 방탕하여 사람들의 비난을 받지 않도록, 하나님말씀에 불순종하거나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일이 없도록, 자녀의 신앙교육을 잘 시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녀들은 세상의 악한 문화 속에서 수많은 영적인 유혹과 공격을 받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는 도덕성과 인성교육은 없고, 세상의 지식과 기술을 주입시키고 성정체성에 대해서 잘못된 관점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회에서는 폭력과 마약이, 인터넷에는 음란한 동영상이, SNS에는 욕설과 비방이 가득하고,
”경쟁에 이겨서,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이기주의가 범람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항상 깨어 있어서 자녀들의 신앙성장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또, 자녀들과 함께 “1주일에 4일이상 큐티하고, 1주일에 1일 이상 가정예배 드리기” 등 구체적인 교육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면서 자녀와 소통하시기 바랍니다.

“야곱의 사랑” (창 29:15-20)

야곱은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그리고 형의 추격을 피하여 외삼촌의 집으로 도망쳤습니다.
양과 염소를 돌보면서 한 달을 지내는 동안, 야곱은 외삼촌의 둘째딸, 라헬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외삼촌의 제안을 받아들여, 야곱은 라헬과 결혼하는 조건으로 칠년 동안 일군이 되기로 결정했습니다(18절).
그렇다면, 야곱은 그 7년동안 어떻게 살았을까요?

■ 1. 야곱의 사랑은 “오직 한 사람(라헬)만 바라보는 사랑”이었습니다. (20절)
7년 후, 외삼촌이 야곱을 속여서 라헬이 아니라 언니 레아를 야곱의 아내가 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라헬을 얻기 위해서, 7년을 더하여 총14년이나 일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그 7년, 그 14년, 아니 그가 죽을 때까지, 오직 라헬 한 사람만을 바라보며 사랑했습니다.

►여러분, 야곱이 라헬 한 사람만 계속해서 바라보았듯이, 하나님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계속해서 바라보고 계십니다.
즉 하나님은 “교회”라는 공동체 전체를 사랑하시지만, 그와 동시에 하나님의 눈은 우리 각 사람을 감찰하시고,
각 사람의 머리카락까지 셀 수 있을 만큼 우리를 일대일로 사랑해 주십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일대일로 만나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큐티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일대일로 만나고, 기도를 통해 일대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인생에 어떤 아픔과 어려움이 있더라도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아파하시고 슬퍼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일대일로 만나주시고 위로하시고 도와주실 것입니다.

■ 2. 두번째로, 야곱의 사랑은 “7년을 수일처럼 여기는 사랑”이었습니다. (20절)
야곱이 20년동안 일한 후 외삼촌 집을 떠날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나이다”(창31:40). 목자의 일이 이와 같이 힘들고 고통스런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야곱이 “7년을 수일처럼 여겼다”는 것은, 그 일을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왜냐하면 오늘의 일이 매우 힘들고 고달프지만, 7년 후 “라헬과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게 될 미래의 모습”을
소망하면, 하나도 힘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과 부끄러움을 끝까지 참고 인내할 수
있었던 이유도 역시, “그 앞에 있는 즐거움”(즉 당신의 죽음으로 인해 성도가 구원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될 수 있다는 미래의 소망)을 가졌기 때문입니다(히12:2).
►여러분, 인생의 어려움이 있을 때, 야곱처럼, 예수님처럼, “미래의 소망, 천국의 소망”을 가지십시오.
우리가 이 땅에서 믿음을 지키고, 선한 일을 하고, 말씀에 순종하다 보면, 핍박과 고난과 억울함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에 소망을 두고, 오늘 하루를 기쁘게 사십시오. 천국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시며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나를 위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고생을 많이 했구나”라며 칭찬해 주시고, 면류관을 씌워 주실 것입니다.

 

 

 

 

 

 

 

 

“가난한 과부의 드림(offering)” (막 12:41-44)

예수님은 여인의 뜰에 있으면서 사람들이 어떻게 헌금을 하는지 지켜보았습니다.
부자들은 동전을 많이 넣었습니다. 그런데 가난한 과부가 와서 두 렙돈을 넣자, 예수님은 제자들을 불러놓고,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부자들)보다 더 많이 넣었다”고 그를 칭찬하셨습니다(43-44절). 왜 그랬을까요?

■ 1. 하나님은 양보다 질, 겉모양보다 속마음을 더 중요하게 보십니다. (삼상16:7)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
또,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마 6:21, 2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과부가 두렙돈(자기의 전재산과 생활비 전부)를, 하나님께 기쁘게 드렸다는 것은,
그가 자기 전재산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했고 자기 목숨보다 하나님을 더 경외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과부는 겉모양으로만 보면 “가장 작은 것”을 헌금했지만, 그의 속마음으로 보자면 “가장 많은 것”을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과부를 크게 기뻐하시며 칭찬했던 것입니다.

► 여러분, 물질,시간,재능,집 등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롬11:36).
우리는 청지기가 되어,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모든 것을 주님께 드려야(offering) 합니다.
하나님께 헌금, 시간, 재능 등 무엇을 드리든지,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고(고후 9:7),
가난한 과부처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드리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드림의 원칙”입니다.  특히, 안개처럼 한때 있다가 없어질 물질때문에 시험에 들지 마십시오.

■ 2. 하나님은 믿음에서 나오는 자발적 포기와 희생으로 드리는 것을 더 기뻐하십니다.
부자는 생활비를 빼고 “남는 돈”으로 헌금을 했기 때문에, 그 돈이 없어도 잘 먹고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과부의 두렙돈은 전재산이며 생활비 전부였기 때문에, 그 돈이 없으면 지금 당장 먹을 것이 없고 생활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과부는 “하나님, 돈이 남아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먹을 수 있는 것을 포기하고 생활을 희생하면서 드립니다.
그러니, 적지만 기쁘게 받아주십시오”라는 믿음으로 드렸던 것입니다. 

►여러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와 반대로 생각합니다.
“하나님, 지금은 돈이 없으니까, 나중에 돈을 더 벌면 헌금을 제대로 하겠습니다.
지금은 너무 바빠서 시간이 부족하니까, 나중에 시간이 나면 큐티도 하고, 기도도 하고, 가정예배도 드리고,
봉사도 하고, 전도도 하겠습니다. 지금은 제가 실력과 재능이 부족해서 섬길 수가 없으니,
나중에 좀더 배워서 실력과 재능이 좋아지면 그때 섬기겠습니다” 그러면서,
뒤로 미루면서 경건생활도 하지 않고 봉사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누구든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눅9:61)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 예수님의 제자로서 합당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여러분, 이 과부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실 은혜, 돌보심, 공급하심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남는 것을 드리는 것보다, 부족하고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즐거움을 포기하고 희생하면서 드리는 것을 더 기쁘게 받으실 것입니다.

“소경 바디매오의 기도” (막 10:46-52)  

예수기도(Jesus prayer)는 주후 5세기경 수도사들이 시작한 짧은 기도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
(Lord Jesus Christ, Son of God, have mercy on me, a sinner)라는 기도를 반복하면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소경 바디매오의 기도”는 예수기도의 기원입니다.

■ 1.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Have mercy on me)
바디매오로 하여금 예수님을 간절히 기다리게 만들었던 가장 큰 원인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 나아가게 만들었던 가장 큰 동기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자기자신에 대한 절망감과 무력감이었습니다. 

그는 맹인이면서 거지(46절)였기 때문에, 인생의 뼈저린 고통과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살면서 육체적 고통으로 괴로워했고,
무엇을 하든지 남의 도움을 의지해야만 했고, 사람들의 조롱 받았고,
가난에 허덕이며 구걸하는 동안 온갖 마음의 상처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 결과, “나 스스로는 살아갈 수 있는 능력도 없고, 지혜도 없고, 소망도 없는,
불쌍한 사람이다”라는 절망감이 그로 하여금 예수님을 찾고 예수님을 바라보게 만든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 많은 사람들이 왜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이 왜 기도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내 능력으로 충분히 잘 살 수 있고, 내가 가진 물질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나는 착하고 양심적이고 좋은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는 교만한 마음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의지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교회에 나오지 않고 기도의 자리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기의 능력과 지혜를 신뢰하지 마십시오. 반대로, 바디매오처럼,
“나는 능력도 없고, 소망도 없고,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자기자신에 대해 철저히 좌절하고 절망하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연약함과 무능력함을 인정하는 사람만이 주님을 바라볼 수 있고,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기도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뜻에서, 예수님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왔다”(마9장)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려움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철저히 자신에게 절망함으로써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하며 나아오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 2. “다윗의 자손, 예수여” (Jesus, Son of David)
바디매오는 예수님이 나오라고 했을 때, 벌떡 일어나서 “예수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은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의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이와 같이 믿음이란 자신의 무능력을 인정하고,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능력하고 죄가 많고 날마다 쓰러지기 때문에, “주님앞에 나아가는 것”이 두렵고 부끄럽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의 의를 힘입어 담대하게 나아가면, 주님이 영접해주시고 큰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는
것을 믿고, 주님 앞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겨자씨만큼, 작은 믿음”을 통해서도,
“산을 옮기는 기적의 역사를 만들 수 있다”고 약속하셨습니다(마17:20).

“주기도문, 그 성숙한 기도제목” (마 6:9-13)

기도는 자신의 생각과 마음과 소원을 하나님께 정직하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를 오래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기도 내용이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라면 그 사람은 “육신에 속한자”(고전3:1)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 자기를 더 사랑하며,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기의 영광을 위해서 일하며,
성경적인 가치관보다 세속적인 가치관을 따라가는 사람들으로서 “영적인 어린아이”와 같습니다(엡4:14).

►여러분, 우리는 어린아이가 되지 말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성장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가 더 성장하고 변화되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 예수님은 “주기도문”에서 6가지의 기도제목(청원)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기도가 어떻게 변화되고 성장되어야 하는지, 그 과정을 설명해 줍니다.

1.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기도)
기도제목 중에 가장 중요하고 우선순위가 되는 것은 “나를 통하여, 내가 행하는 모든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길 소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기도)
하나님이 왕이 되시고, 내가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뜻(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큐티하고 기도할 때 어떤 말씀을 주시든지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소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
“제가 학생으로서, 자녀로서, 부모로서, 직장인으로서, 크리스챤으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주십시오. 제가 해야 할 일과 사명을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시면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이, 주기도문 전반부의 3가지 기도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처럼, 하나님과 직접 관련이 있는 기도제목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겠습니다”라고
기도하면서,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3가지 기도는 우리(사람)과 관련된 기도제목입니다.

4.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daily bread)을 주시고” (육체적 필요를 구하는 기도)
의식주 등 기본적 필요를 위해서 기도하되, 욕심부리지 말고 물질을 걱정하지 마십시오.

5.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길 소원합니다” (마음의 죄용서를 구하는 기도)  
큐티를 통해 말씀의 빛을 받아서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시간을 자주 가지십시오.

6.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길 소원합니다” (영적으로 거룩한 삶을 위한 기도)
“사탄의 유혹에 빠져 죄짓는 일 없이, 거룩한 삶을 살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십시오.

►여러분, 6번에서1번으로올라가면서, “하나님의영광”을구하는성숙한기도로변화되고성장하십시오.
그리고기도와일치하는삶을사시기바랍니다. 이것이, 예수님이가르쳐주신영적성장의단계요, 기도성장의방향입니다.

“신앙은 인격적인 관계입니다” (막 6:47-52)

기독교신앙은 성경을 지식적으로 알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넘어서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모세가 떨기나무 불꽃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났듯이, 우리가 하나님을 더 많이 만나고, 더 깊이 경험할수록, 우리의 신앙은 더 성장하는 것입니다.

■ 오병이어의 기적이 있은 후, 제자들은 배를 타고 벳새다로 출발했고 예수님은 기도하기 위해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밤 사경”(새벽3-6시)이 되어 깊은 어둠이 내렸을 때, 배는 갈릴리호수 중간에 있었습니다. 
“바람이 거스르므로” 즉, 역풍이 불어 배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쓰러질 것 같았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큰 두려움과 불안감을 느꼈습니다. 아마 그들은 “예수님은 육지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지 모를 것이다”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힘겹게 노를 젓고 있는 그 시간에, 예수님은 어디에 계셨습니까?
“바다 위를 걸어서, 그들에게 오셨다”(48절)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전혀 몰랐지만,
예수님은 해변에서 불꽃같은 눈동자로 그들을 계속 지켜보았습니다.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젖고 있는 것, 배가 뒤집어질 위기 속에 있는 것을 보시고, 급하게 물위를 걸어서 그들에게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을 당장 위험에서 구원해주지 않고, 왜 그 배를 모른 척하면서 옆으로 “지나치려고” 했을까요? (48절)
예수님은 제자들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워하는지 알고 있고, 도와줄 수 있는 능력도 있기 때문에,
지금 당장 은혜를 베풀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자기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이런저런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면, 예수님은 그들이 그런 교만한 마음을 내려놓을 때까지 지켜 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모른 척하며 옆으로 지나갔습니다. 그들이 “주님, 도와주십시오”라는 믿음으로
예수님을 간절히 초청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짝사랑”하는 것처럼, 일방적으로 도와주시고 계속해서 사랑을 표현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도움을 받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할 것이며 감사하는 마음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내 능력으로 문제를 푼 것처럼, 교만한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말씀처럼, 우리가 풍랑을 만나 어려운 일을 당하여 주님께 도움을 요청할 때,
주님께서 그때 도와주시면 우리 마음 속에 감사와 기쁨이 커지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깊어질 것입니다.

►신앙은짝사랑이아니라서로사랑할때인격적인관계가깊어집니다.
주님은우리를도우실준비가다되어있지만, 우리스스로주님을찾고, 주님의말씀에반응하고, 주님을삶의현장에초청하고,
주님의권능을믿는믿음으로도전하고행동하기를원하십니다.
►그러므로여러분, 예수님이우리를위해서준비해놓으신, 그능력과은혜와축복을믿는믿음을가지십시오.
인생의배가흔들려서위험할때, “큰믿음”을가지고, 예수님께적극적으로도움을요청하십시오.
그래서하나님을더많이경험함으로, 하나님과의관계가더욱더깊어지시기바랍니다.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율법과 율법주의)” (막 3:1-6)

생명은 존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창조하셨고, 생명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이유와 십자가에서 죽으신 목적도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죄때문에 파괴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서 부활의 풍성한 생명력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요10:10).

► 안식일에 예수님이 회당에 가셨는데, 거기엔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은 거룩한 날이므로, 쉬어야 하며, 안식일에 일하는 사람은 죽여야 한다”(출31:15)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병자를 고쳐줌으로써 율법을 어기는지 지켜보았습니다(2절).
그들의 비난을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손마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셔서, 고쳐주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바리새인들에게 질문하셨습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4절)

■ 1. 예수님은 “안식일율법이 잘못됐거나, 폐지해야 된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안식일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를 잘 설명하심으로써 율법준수를 강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다”(막2::27)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안식일을 만든 목적”이고, 더 나아가서 율법을 만든 이유이며 율법의 정신입니다.

►여러분, 안식일에 돈을 벌기 위해 일하거나, 자기 쾌락을 위하여 행동하는 것은 율법을 어기는 것 입니다.
그러나 선을 행하거나, 생명을 구하는 것은 율법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는 것입니다.

►안식일 외에도, 구약의 모든 율법은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을 보호하고
생명력을 발휘하며 잘 살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 만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계명과 도덕법을 생명처럼 생각하고 잘 지키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잘 지킬 때,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은혜만 받고 율법은 버려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함으로써,
우리를 십자가앞으로 인도하여 “죄용서의 은혜”를 받게 합니다.
►여러분,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아서 율법에 순종하는 거룩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딤전4:5).

■ 2. 예수님은 율법으로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셨지만, 바리새인들은 오직 율법을 지키고 행하는 일에만 관심이 있습니다(2절).
그들은 율법을 잘 지킨다는 것을 자랑했지만, 실제로는 생명을 죽이고 남에게 상처를 주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것이 “율법주의”입니다.
►여러분, 율법주의자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믿음)보다 행함을 중요시합니다.
그래서 형식주의, 위선, 판단과 정죄, 자기 생각을 고집함, 자기 의를 자랑함,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함, 성령의 능력보다 자기의 능력을 의지함 등의 폐단을 가져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영적으로 항상 깨어 있어서, “율법”을 열심히 행하되, “율법주의자”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는 성도, 응답하시는 하나님” (렘 33:1-3)

곤경에 처한 자의 간절한 마음과 절박한 바램은 듣는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사방이 꽉 막힌듯이 힘들고 어려운 환경에 있거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니듯이 두렵고 불안한 감정이 올라올 때,
하나님께 간절한 마음과 절박한 바램으로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의 마음이 감동을 받습니다.
그래서 그 부르짖는 기도를 듣고 응답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고난과 아픔을 당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의 신음소리에 응답하시는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 1. 그래서 예레미야가 시위대뜰에 있는 감옥에 갇혀서 핍박과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은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다”(3절앞)고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창1-2장에 나오듯이 놀라운 창조를 계획하시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시는
하나님의 능력(2절)을 믿고,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감옥에 갇힌 예레미야처럼, 인생의 어떤 어려움과 고통과 핍박이 있다면, 두 가지 믿음으로 간절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첫번째는, 하나님이 반드시 내 기도를 듣고 응답하실 것이라는 믿음.
두번째는, 내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내 인생에 새로운 일을 창조하시고, 놀라운 일을 시작하실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셔서, 여러분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어려운 환경을 무너지게 하시고,
여러분을 공격하는 악한 대적을 징계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인생과 가정과 일터에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실 것입니다.

■ 2. 두번째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실 때,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로 응답하실 수 있다”(3절뒤)는 사실입니다.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다”(사55:8-9)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가 원하는 때가 아니라 “다른 때”에 응답하시고, 내가 원하는 방법이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응답하시고,
때로는 내가 “가고 싶은 길”은 막으시고 “가기 싫은 길을 열어 주십니다. 더 나아가서, “No(그건 안돼)”라고 거절하실 때도 있습니다.
바울도 육체의 질병을 고쳐달라고 3번이나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했지만, 하나님께서 거절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바울이 약하고 아프고 낮아져서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더 크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고전12:9).

▶여러분, 아무리 “부르짖어” 기도해도, 응답이 없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내 기도를 “거절한 것”처럼 보여서, 절망했습니까?
그래서, 지금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이때야말로, 우리에게 믿음이 필요할 때이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시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원하는 때와 방법으로 응답해 주시지 않은 것은, “내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섭리의 하나님이다”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그래서 내 기도대로 응답하지 않으신 것, 내 원하는 길을 막아주신 것, 내 일을 실패하게 하신 것,
내 기도를 거절하신 것조차도 은혜로 받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영존하시는 아버지, 그리스도” (사 9:6)

큰집에 살지만 대화가 없고 기쁨이 없는 부자보다 작은 집에 살지만, 대화가 넘치고 기쁨이 많은 사람이 더 행복합니다.
관계 속에서 기쁨을 느끼는 인간의 본성은,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특히, 하나님의 존재방식)을 닮은 것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 아들의 네번째 이름은 “영존하시는 아버지”입니다.
“아들이 아버지고, 아버지가 아들이다”고 말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인간의 이성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삼위일체하나님의 존재양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부,성자,성령 간의 관계를 헬라어로 “페리코레시스”(perichoresis)라고 하는데, “페리”는 “원”이고, “코레시스”는 “춤”이라는 뜻입니다.
즉 성부,성자,성령, 3위가 서로 사랑하고 서로 기뻐하기 때문에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면서 춤을 추는 이미지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로 연합된 “관계적 공동체, 사랑의 공동체”를 이룹니다.
“상호침투” (서로 침투하며), “상호내주” (서로의 안에 거하고), “상호환대” (서로기뻐하며 섬긴다)”라고 번역됩니다.
이것이, “삼위일체하나님의 존재양식”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관계적 하나님, 공동체적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관계를 맺을 때, 가장 기쁘고 행복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소원은 “모든 신자들이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아버지,아들,성령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서) 함께 연합하여 사는 것”입니다(요17:21).
삼위일체하나님이 누리고 있는 그 사랑과 기쁨을 우리에게 나눠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과 연합한 신자는 영적으로 성장합니다. (요 15:5)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즉,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과 연합된 자는 영존하시는 아버지가 주는 불멸의 생명력,
예수님이 주는 부활의 능력, 성령이 주시는 은사와 능력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계속 성장하여 열매를 맺습니다.
영적성장 1단계는 비신자들이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단계”입니다. 2단계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는 단계”로서,
예수영접 후, 1주일에 2-3일정도 성경 읽고 큐티하고 기도하면서, 교회활동 (제자훈련, 소그룹, 봉사, 전도 등)에 적극 참여합니다.
3단계는 “그리스도와 친밀한 관계를 맺는 단계”로서 1주일에 4-5일정도 말씀읽고 기도하는 습관이 있는 사람입니다.
삶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이 많고, 범사에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리더십이 될 수 있는 수준입니다.
4단계는, “그리스도 중심 단계”로서, 예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인생을 예수님께 맡김으로써,
예수님과 연합을 이루는 단계입니다. 철저한 순종과 자기부인 속에 기쁨과 평강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2.  하나님과 연합한 신자는 범사에 사랑과 기쁨이 넘칩니다. (요 15:11)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깊이 연합하여 영적으로 성장할수록,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과 기쁨이 충만합니다.
그래서 바울처럼 극심한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있고, 다윗처럼 환난과 핍박 중에도 찬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그리스도” (사 9:6)

사람은 범사에 종교성이 많기 때문에(행17:22), 수많은 신들 중에 “가장 강한 신”을 선택하여 의지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에는 전쟁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예를 들면, 구약의 하나님은 출애굽하기 전에
10가지 재앙을 통해서 강,태양,자연,생명 등을 다스리는 기적적인 능력을 보여주셨습니다.
또 이스라엘이 이방민족과의 여러 전쟁에서 승리케 함으로써, “이방의 신은 참신이 아니라,
헛된 우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에게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나외에는 다른 신이 없나니…너희는 두려워말라”(사44:6,8), “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나니…땅끝의
모든 백성들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사45:21,22)

오늘말씀에서 “한 아기”인 예수께서 이땅에 태어났고, 그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아들”인데, 그에게 주신 세번째 이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었습니다.

“전능하신”을 원어로 보면, “강한 자, 전쟁에서 승리한 용사”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이세상 모든 신과 우상과 대적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신 구약의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신 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완전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능력까지 행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폭풍을 잠잠케 하시고 무화과나무를 마르게 함으로써, 자연만물을 다스리는 능력을 보여주셨습니다.
중풍병자, 소경, 문둥병자 등의 치유사역은 예수님이 메시야임을 증명하는 능력입니다(눅7:22).
광야에서 40일 금식 후에 사탄의 유혹을 이기신 것은 사탄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귀신을 쫓아낸 축사사역은 악한 영을 쫓아냄으로써, 예수님이 영적세계를 다스리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나사로 등 죽은 자를 살리신 것은 예수님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 능력을 가졌음을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심으로, 인간의 능력으로는 절대 이길 수 없는 죄와 죽음의 능력을 이기고 승리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모든 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전능하신 하나님으로서의 능력”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를 믿고 영접했기 때문에, 우리 마음속엔 이미 성령님이 임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신 “권능(권세와 능력)”을 이미 다 받은 것입니다(행1:8).
그러므로 예수님은 모든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심을 믿으십시오.
먹고 사는 일을 걱정하지 말고, 질병과 고난과 핍박과 악한 자와 귀신 등 온갖 대적들 앞에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오직 예수의 능력을 믿는 믿음으로 영적전쟁에 뛰어들어가 선한 싸움을 시작하십시오.

예수의 뒤를 따라가는 제자로서, 하나님말씀에 순종하는 일, 복음을 전하는 일, 섬기는 일에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도전하는 자만이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서 예수의 전능하신 능력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사(Counselor), 조언하시는 그리스도” (사 9:6)

그리스도는 우리를 만드신 “창조주”이시며, 우리를 다스리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현재, 우리의 문제가 무엇이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가장 “지혜로운 조언자”이며, 능력있는 상담자이십니다
.
예를들면, 예수님은 산상수훈(마5-7장)에서 제자의 사명, 의롭고 도덕적인 삶, 하나님나라에 대해서 가르치셨습니다.
또 다락방강화(요13-16장)에서는 새계명, 성령의 오심, 믿음, 열매 등에 대해서 조언하셨습니다.
그 외에도 30개 이상의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나라, 제자도, 종말 심판, 천국에 대해서 가르치셨습니다. ,

바울은 예수님께서 조언하셨던 그 모든 말씀을 4가지로 분류했습니다. (딤후 3:16)
예수님은 말씀이시면서, 우리에게 말씀을 해석해주시는 “카운셀러, 성령”이 되셔서 우리 안에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진리의 말씀을 해석해 주심으로써 우리가 모르는 것에 대해서 “교훈”해 주십니다.
또 우리의 죄를 지적함으로써 우리를 책망하여 회개케하십니다. 또 우리가 잘못된 생각을 할때 “바로잡아”주시고,
범사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로운 길”을 선택하도록 교육시켜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말씀과 성령”을 붙잡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께서 조언해 주시는 말씀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일까요? (딤후 3:17)
1.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기 위해서” 입니다.
“온전케 한다”는 뜻은,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서/죄를 짓지 않고, 거룩한 인격과 거룩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카운셀러, 성령” 이 하시는 가장 큰 직무는 우리에게 말씀을 통해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함과 의로 교육하심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거룩한 인격을 갖고 거룩한 행동을 하게 만드는, “성화의 작업”(성령의 열매)입니다.

여러분, 성화는 성령의 카운셀링과 신자의 노력이 함께하는 연합사역입니다.
즉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조언의 말씀을 주시고, 우리는 경건의 습관을 통해서 그 말씀을 들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가 죄짓지 않으려고 노력할 때, 우리는 거룩하게 변화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죄와 거룩”이 공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를 죽일 때 거룩해지고,
육체의 소욕을 절제할 때 성령의 소욕이 커지는 것입니다.

2.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사랑하며 섬길 수 있도록 여러가지 은사와 능력를 주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성령충만하여 인격이 더 거룩해질수록, 섬김이 더 많아집니다.
인격의 변화가 없으면서 신앙생활과 봉사만 열심히 하면, 바리새인처럼 위선자가 됩니다.
또, 성령께서 은혜를 주셔서 인격이 성화되었지만, 그것이 섬김의 행동” 으로 표현되지 않으면,
한 달란트 받은 종처럼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책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내면의 인격”이 성장하는만큼, “외적인 섬김”으로 표현하시기 바랍니다.

“기묘자, 놀라우신 그리스도” (사 9:6)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인격과 본질과 행하시는 일을 상징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 메시야의 첫번째이름은 “기묘자”(Wonderful)입니다.
놀라운 일, 경이로운 일, 상상할 수 없이 기이한 일, 기적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낮은 세상으로 내려와서 비천한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는 것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성육신”(하나님이 인간이 되는 일)은, 창세 이후 한번도 일어난 적이 없는 “놀라운 일”이었으며,
인간의 지혜로는 “상상할 수 없는, 기이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들의 이름을 “기묘자”라 지어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면서 인간이십니다.
예수님의 인격에는 신성과 인성이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생애는 “놀라운 일과 경이로운 기적”이 가득합니다.
예를 들면, (1)예수님의 탄생에는 “인간의 비천함과 하나님의 존귀하심”이 동시에 나타났습니다.
“인성”으로 보자면, 예수님은 지극히 가난한 부모에게서 태어나서, 지극히 낮은 곳인 말구유에 몸을 뉘었습니다.
그러나 “신성의 존귀”를 가졌기 때문에, 동방박사들이 찾아와서 값비싼 황금을 바쳤고 천사들이 경배하는 기이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2)공생애동안, 예수님은 “신적인 능력”을 발휘하여, 죽은 자도 살리고, 귀신도 몰아내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인성”을 가졌기 때문에, 머리둘 곳이 없을 만큼, 가난했고, 배고픔과 피곤함을 느꼈습니다.
(3)예수님의 인성은 “십자가위에서”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무한한 능력을 가진 예수님은 그 능력을 사용하지 않고 무한한 온유를 보이셨습니다.
무한한 영광을 가진 예수님이 무한한 수치를 당하셨고, 무한한 권세를 가진 예수님이 무한한 순종을 보이셨습니다.
(4)예수님의 신성은 “부활과 승천”에서 절정을 이루어, 죄와 죽음의 권세를 도말하시고 완전히 승리하시고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여러분, 이와 같이 예수그리스도는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가졌기 때문에 존재 자체가 “기묘자(놀랍고 경이로우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신성만 가졌다면 낮아질 수 없고 죽을 수 없었을 것이며, 인성만 가졌다면 능력을
행하실 수 없고 부활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신성과 인성이 함께 가졌기 때문에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1.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기 때문에 우리가 해야 할 반응은 “예배”입니다. 
만물의 창조주이며 구원자이신 그리스도는 찬양과 경배를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그분께 예배드리는 것을 갈망하고, 열정적인 예배를 통해 그분을 만나십시오.

■2.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는 매순간 “예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육체를 입으시고, 기쁨 슬픔 아픔을 체험하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이유는
임마누엘 성령으로 우리안에 오셔서 범사에 우리와 함께하시길 원했기 때문입니다.